◎세상은 변해도 난 항상 ‘그 길’에서…/하나 둘 떠나버린 80년대라는 길에서 길들여지지 않는 외로운 정신으로 몸 낮추고 부르는 새 희망의 노래시인 도종환(44)씨가 일곱번째 시집 「부드러운 직선」(창작과비평사 발행)을 냈다. 「접시꽃 당신」으로 수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적시게 한 것이 벌써 12년 전이다. 이후 독자가 100만 명이 넘는 서정시인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수도 있었던 그는 서정시인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충북 청주 토박이다. 감옥도 갔다 온 전교조 충북지부장, 충북지역 민주단체연합 공동대표, 민예총 충북지부 문학위원장등 고향에서 그가 관여했던 몇가지 일이 다른 길을 보여준다. 그 길과, 앞으로 가고 싶은 길에 대한 희망을 담은 것이 이번 시집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자정을 넘긴 길바닥에 앉아/소주를 마시며 너는 울었지/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다시/올라오는 길밖에 없을 거라는 그따위 상투적인 희망은/가짜라고 절망의 바닥 밑엔 더 깊은 바닥으로 가는 통로밖에/없다고 너는 고개를 가로저었지」(「길」부분). 80년대라는 연대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이 시의 「너」처럼 몸부림치며 울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이 걸었던 길을 떠났고, 「남아 있던 이들도 이제 더는 견디지 못하고 부산히 짐을 꾸리고 있는 길」(소설가 김남일)이다.
도씨는 그러나 여전히 그 길 위에 있고 싶어 한다. 「그래 정말 몇편의 시 따위로/혁명도 사냥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말대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난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잠겨갈 수만은 없다/나는 가겠다 단 한 발짝이라도 반 발짝이라도」.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모랄』이라고 도씨는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사회 내부의 모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어느 시대에서나 자신을 낮추고 전체를 위해 희망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이다. 그 자세가 「부드러운 직선」이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산간 절집의 사뿐한 추녀와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 그 뒤편의 너그러운 능선까지 부드러움으로 꽉 찬 듯한 조화는 실상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잡아/지붕을 받치고/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있어야만 가능하다.
곡선에서 직선을, 직선에서 다시 곡선을 읽어내는 시선은 「가장 화려한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역설의 사고를 보여준다. 그 사고가 「그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외로운 정신」, 시인의 정신을 낳는 것이다. 도씨가 당장 자신의 길에서 가장 먼저 가 닿고 싶은 곳은 학교다. 해직돼 10년간 떠나야 했던 고향 중학교에서 다시 우리 말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가장 낮은 소망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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