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 벗어나기 위해 5년간 탈옥계획/칼 빼드니 총든 경찰이 도망가고 넘어지고…/병원 수차례 오가며 치료 검문허점도 밝혀『죽어야 하는 죄인이지만 국민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게 있어서 이 글을 남깁니다』
16일 새벽 탈옥이후 다섯번째 경찰의 검문을 뚫고 달아난 탈옥수 신창원(申昌源·31)이 차안에 남긴 청색 노트에는 탈옥 경위와 도피행적, 경찰의 허술한 검거 체계가 메모형식으로 25쪽에 걸쳐 낱낱이 기록돼 있다. 메모에는 교도관및 교도행정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신의 가족과 동거녀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한 내용도 담겨 있다.
신은 메모에서 탈옥하기 위해 5년동안 계획을 세웠고 부산교도소 경비의 허점을 찾기 위해 다시 3개월간 치밀한 준비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신은 『교도소에서 행해지는 무자비한 구타와 가혹행위, 인간적인 모멸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옥했다』면서 『화장실 쇠창살 2개를 2개월간에 걸쳐 절단했고 체중을 빼느라 한달간 굶었다』고 적었다.
신은 또 『5m가량의 담밑을 2시간가량 파서 빠져나간후 공사장에서 쓰는 철근을 이용, 두번째 담을 넘었다』면서 『총을 맞을 각오를 하고 담을 넘었지만 경비대원이 자고 있었는지 다행히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은 특히 탈옥후 수감당시 자신을 심하게 구타했던 교도관을 「평생 침대에 누워 보내게 만들 작정으로」 다시 찾아갔지만 교도관의 가족이 걱정돼 포기했다고 적어놓았다.
지난해 1월 탈옥후 충남 천안시와 경기 평택시에서 다방종업원 등 2명의 여성과 동거생활을 했던 신은 그동안 겪었던 4차례의 검거위기에 대해 『경찰이 나를 산채로 잡으려고 하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표현으로 경찰을 우롱하고 있다. 97년 10월 천안 동거녀의 집앞에서 검거될뻔했던 적에 대해 신은 『눈에 정통으로 가스총을 맞았지만 순간적으로 반항하며 빠져나왔다』고 적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돼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땅을 파 은신처를 만들고 며칠간을 숨어지냈다』고 밝혔다.
신은 『지난해 12월 평택 동거녀의 집을 급습한 경찰들은 총을 들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칼을 들고 대항하니 저희들끼리 도망치다 넘어졌다』며 『바깥으로 빠져나와 서성이니까 포위하고 있던 형사들이 나를 몰라보고 「위험하니 집으로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고 적었다. 신은 특히 『칼만 있으면 열명도 짧은 시간에 자신있게 처리할 수 있다』며 『그때 쇠파이프에 맞아 왼팔이 부러져 훔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전주와 대전의 병원을 수차례 오가며 깁스를 하는 등 치료를 받았다』고 적어 경찰의 신고및 검문체계에 큰 허점이 있었음을 폭로했다.
신은 1월 동거녀를 만나기 위해 천안에 갔다가 검거에 나선 경찰관의 총기를 빼앗은 일에 대해서는 『왼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지만 손쉽게 총을 빼앗을 수 있었다』면서 『내 차안에 다른 동료가 타고 있는 것처럼 「야 모두 쏘아버려, 얘들은 총알이 없어」라고 거짓 고함을 지르자 모두 달아났다』고 적었다.
한편 신은 『교도소에 다시 가서 가혹행위를 당하느니 차라리 경찰의 총을 맞고 죽겠다』며 교도관 비리및 교도행정 비판에 메모의 상당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신은 『재소자는 몸이 아파도 의사가 아닌 교도관이 진찰하고 약을 처방하는 등 제대로 치료조차 못받는다』면서 『월급을 털어 재소자를 돕는 교도관도 분명히 있지만 많은 교도관들이 가혹행위를 저지르고 비리에 연결돼 있다』고 적었다.
신은 메모 끝부분에 『내 형제들과 아버님,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여인들을 힘들게 하면 엄청난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메모에는 또 『자수의사가 전혀 없으며 추가 범행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적혀 있어 경찰을 긴장시키고 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서울 은신 행각/여성용 가발·돈뭉치·쇠톱 등 준비 치밀
탈옥수 신창원(申昌源·31)은 어떻게 마음대로 서울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을까.
16일 새벽 신이 버리고 달아난 서울 48라 5186 엔터프라이즈 승용차는 신의 치밀한 속성을 반영하듯 도주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변장에 필요한 여자용 가발과 여자용 한복·안경, 다른 사람 명의의 주민등록증 1개와 운전면허증 2개, 차량 변조를 위한 서울 대구 경남 지역의 번호판 5개, 휴대용 가스버너와 관광지도책, 도주자금 마련을 위한 절단기 및 쇠톱 과도 드라이버 등.
특히 여자용 개량 한복 두벌과 여자용 가발 등이 발견돼 「변장의 귀재」인 신창원이 주민들의 눈을 속이면서 마음놓고 돌아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별것 아닌 영어 쉽게 끝내려면」이라는 영어학습서까지 발견돼 도망자 답지 않은 「여유」도 즐겨온 것으로 보인다. 함께 발견된 1만원권 869장이 묶인 뭉치와 10만원권 수표 6매, 미화 6,922달러는 그가 도주중에도 계속 강도행각을 벌이며 자금을 마련,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누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신이 지방에서 네차례나 검거 위협에 시달리며 검문검색이 강화되자 오히려 서울로 잠입, 허를 찌른 것으로 보고 있다. 신이 경찰의 불심검문중 M당구장을 들먹거린 것은 이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방 여종업원들과 동거하며 도주생활을 해온 신의 행각에 비추어 볼때 원룸 형식의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는데다 단란주점, 룸살롱 여종업원 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 포이동 일대는 신에게는 최적의 은신처.
경찰도 이같은 점에 주목, 신이 5월18일 경북 성주에서 검거직전 도주해 서울로 들어온뒤 또다른 동거녀와 함께 포이동 부근에서 은신해온 것으로 보고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박천호 기자>박천호>
□탈옥 및 도피 일지
▲97년 1월20일=부산교도소 탈옥
▲10월30일=충남 천안시 목천면 빌라서 경찰의 체포 직전 도주
▲12월30일=경기 평택시 신장1동 빌라서 경찰과 격투끝에 도주
▲98년 1월11일=충남 천안시 S식당 앞에서 경찰관 2명과 격투끝에 권총 탈취후 도주
▲3월6일=전북 김제시 금구면 대화리 마산마을 신선휴게소에서 검문중 도주
▲7월16일=서울 강남구 포이동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자 타고 가던 차량을 버리고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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