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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校에 꽃피는 문화/임철순 부국장겸 문화과학부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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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校에 꽃피는 문화/임철순 부국장겸 문화과학부장(메아리)

입력
1998.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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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가 보면 그 사이 운동장에는 잡초가 많이 자라나 있다. 간단한 개학조회를 마친 아이들은 운동장에 일렬로 서서 풀을 뽑는다. 교장선생님은 『풀을 뽑는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며 『너희들의 운동장이니 너희가 풀을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여름 땡볕에 산이고 들판이고 마구 헤집고 다녀 새카매진 아이들은 땟국물이 흐르는채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풀을 뽑았다.60년대 초반 시골 초등학교의 풍경이다. 그 무렵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었다. 모든 일이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요즘말로 하면 학교는 문화의 집이면서 지역문화센터였던 것이다.

그러나 농어촌인구의 감소에 따라 82년부터 소규모학교가 통폐합되면서 수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다. 98년 4월현재 전국의 폐교는 1,995개교나 되며 2000년까지 364개교가 더 폐지될 예정이라고 한다. 문닫은 학교 가운데 29.8%인 595개교는 아무런 용도로도 활용되지 못한채 버려져 있다. 풀은 버려진 학교를 잘도 안다. 문닫은 학교의 긴 「방학」을 틈타 잡초는 왕성하게 자라나서 폐교를 폐허로 만들어간다. 그런 곳들은 청소년탈선의 온상이 되기 일쑤이다. IMF 이후 귀농인구가 늘어 올해에만 4,000여 가구가 시골로 돌아갈 전망이라지만 재개교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이 휴가철에 고향을 찾았다가 버려진 모교를 본 사람들은 가슴이 아플 것이다. 문닫은 학교는 농산물 재배·가공공장이 되거나 유치원 학원 연수원등 교육시설, 청소년 수련시설로 변했고 예술품 창작시설, 조각공원이 된 곳도 일부 있다.

문화관광부가 며칠 전 창작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을 위해 폐교를 창작스튜디오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1차적으로 수도권과 충청권, 영·호남권에 1∼2군데씩 내년까지 시범설치한 뒤 각 시·도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연내 문을 열 김해지역 스튜디오에 2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형태에 따라 설치비도 지원키로 했다고 한다.

창작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면 작가들에게는 작품활동의 산실이 되며 학생들에게는 소중한 예술체험 학습장이 된다.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지역문화예술의 교류장터, 주변의 문화유적과 연계된 문화관광 명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미국에는 70여 군데의 창작스튜디오가 폐교에 설치돼 연간 4,000여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험을 살펴 바람직한 모형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창작스튜디오가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폐교의 관리·운영을 맡고 있는 지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행정담당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놀리는 시설을 선심쓰듯 빌려주는 차원을 지양,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적극적으로 문화인들을 유치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현재 활용되지 못하는 폐교는 교통여건이 나빠 아무도 돌아보지 않거나 임대료가 현지 부동산시세보다 비싼 곳들이다. 임대요율은 재산평정가격의 100분의 3 이상으로 정하게 돼 있어 대부분의 지자체가 연간 임대율을 100분의 5 이상으로 정했다고 한다. 법규정을 고쳐 임대율을 낮추거나 폐교활용촉진법과 같은 법을 새로 만들어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입주대상자를 엄정하게 선별해 무상입주 혜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소극적인 유지·관리위주의 행정을 벗어나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문화부와 교육부는 문화행정과 학교재산 관리업무가 동떨어지지 않도록 상설 협의기구를 만들어 운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문닫은 학교에서 문화의 문이 열리고 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날 수 있다. 버려진 폐교에 잡초 대신 문화의 꽃이 피어나게 하는 것은 보람있고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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