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의 대외가치가 절상(切上)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선 우리경제의 기초체력과 경쟁력 강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크게 반길만한 일이다. 수입품가격이 싸져 당장 물가안정에 도움이 되고, 엄청난 대외원리금의 상환부담도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환율급락, 즉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의 가파른 절상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른데다 경제력 회복을 반영했다기 보다 외환수급 왜곡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란 점에서 오히려 경계해야 할 일이다.실물경제가 극도로 위축되어 있고 반짝하던 수출경쟁력마저 기력이 쇠잔해가는데 원화가치가 특별히 급등할 이유는 없다. 지난 6월15일 1,434원까지 갔던 원·달러환율이 최근 1∼2주사이에 하루평균 10원정도씩 떨어져 1,300선 붕괴를 눈앞에 두고있다. 작년말이후 수출경쟁국인 일본의 엔화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6.4%,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는 7.4% 절하됐는데 우리의 원화는 거꾸로 27.1%가 절상됐다. 경제위기를 겪고있는 아시아 각국이 자국 화폐가치를 절하하고 있는데 유독 원화만 고평가를 지속한다는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물론 환율이 떨어지는 것은 단기 공급우위의 시장수급상황 때문이다. 그동안의 경상수지 흑자에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과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차입한 돈이 몰려들어 외환공급은 넘치는데 수요는 급격히 줄고 있다. 원자재수입도 금융경색으로 막혀있었고 투자도 엄두를 못냈으니 달러로 대금 치를 일이 원천적으로 감소했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비축했던 달러가 위기진정과 함께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도 환율급락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작년말의 환란(換亂)이 초래된 배경에는 원화의 고평가를 장기 방치한채 1만달러 국민소득이란 명목뿐인 숫자유지에만 집착했던 안이한 정부의 환율운영에 큰 책임이 있었다. 일시적인 수급불균형에 따른 불안정한 원화의 고평가는 이미 기력을 잃어가는 수출경쟁력에 당장 치명적인 타격이 되고 구조조정과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외자유치 노력에도 걸림돌이 된다. 원화의 고평가가 허상이고 곧 원화환율이 다시 오를 것이란 전망하에서 외자는 빠져나가지 들어올 리가 없다.
싱가포르 역외선물환시장에서 최근 형성된 1년짜리 원·달러 선물환율이 1,550원선 전후라면 국내시장의 달러환율도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게 정상이다. 환율이라는 중요한 가격기능이 마비되고 왜곡되면 경제의 대내외균형도 비꼬여갈 수 밖에 없고 제2의 환란을 자초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