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예가 심수관가(沈壽官家) 도예전 「400년만의 귀향」에 전시된 140여점의 작품중 심씨가문의 작품이 아닌 것이 몇점 있다. 박수승(朴壽勝)의 칠현국금수대명(七賢國錦手大皿)이란 큰 접시가 그중 하나다. 화려한 채색은 돋보이지만 기법이나 분위기 등이 심씨 가문의 것들과 큰 차이가 없어 무심히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력을 알고보면 뿌리를 소중히 여김이 후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깨닫게 된다.■심씨처럼 규슈(九州) 남단 도공마을 나에시로가와(苗代川·지금의 미야마) 출신인 박수승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도발할 때와 패망할 때의 외무상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의 아버지. 심씨는 근래 도쿄(東京) 홍고(本鄕)의 어느 골동품상에서 이 작품을 발견해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샀다고 한다. 아마도 도쿄제국대학 독문학과에 다니던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박수승이 내다 판 작품일 것이라고 심씨는 추측하고 있다.
■400년전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잡혀가 사쓰마(薩摩·지금의 가고시마) 땅에 정착한 남원 도공들은 영주의 보호를 받으며 도자기 굽기를 천직으로 알고 대를 이어 조선인으로 살아왔다. 명치유신 이후 조선을 멸시하는 풍조가 일어나자 박수승은 명문성씨를 사 입적하는 형식으로 일본이름으로 바꾸었다. 100% 한국인 피를 받은 네살배기 박무덕(朴茂德)소년도 도고 시게노리란 일본인이 되었다.
■외교관이 된 시게노리는 쉼 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 첫사랑에 실패한 그는 노총각으로 살다가 독일대사 시절 독일인 과부와 결혼해 딸 하나를 얻었다. 양자삼은 사위와 딸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외손자중 하나는 일본 외교관, 하나는 미국 언론인이 되었다. 400년 동안 성을 바꾸지 않고 돌아와 귀향전을 갖는 심씨가와 너무 대조적이다. 일민미술관에 전시된 박수승의 작품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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