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정신의 경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신력(精神力) 하나로 지탱해 온 경제라는 뜻이다. 『하면 된다』는 패기와 감투정신, 『잘 살아 보세』라는 국민적 공감과 열정, 빈곤을 탈출하기 위한 필사적인 향상심과 성취욕 같은 것들이 한국경제를 특징지어온 정신적 요소들이다.축적된 자본이 없고 부존 자원은 빈약하고 기술도 없고 시설도 없고 인프라도 안돼있고… 잿더미만 남은 전쟁의 폐허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것 뿐이었다. 『할 수 있다. 한번 해보자』는 강인한 정신력이 우리의 단 하나뿐인 자산이었던 것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요인을 연구해온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정신적 요소들이다. 헌신적인 관료들과 왕성한 투자의욕을 가진 기업가들, 밤을 낮삼아 일에 몰두해온 부지런한 근로자들은 우리 경제의 핵심적인 성장요인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국민적 통합과 단결이었다. 기업가들은 정부를 믿었고 정부는 기업가들을 신뢰했다. 근로자들은 기업가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국민들은 정부시책에 순응했다.
정부가 수출입국의 기치를 내걸면 기업들은 지렁이 이쑤시개 까지 내다팔아 달러를 벌어왔고 새마을 운동을 제창하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린 학생들 까지 나서서 노래를 합창하며 새벽부터 일들을 했다. 근로자들은 열사(熱砂)의 사막에서 횃불을 켜가며 일을 했고 손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져 주민등록증에 지장이 찍히지 않는 근로자들이 많았다. 우리 모두가 열렬한 애국자들이었다.
우리 경제가 IMF사태 훨씬 이전부터, 방향과 힘을 잃고 10여년에 걸쳐 과도기적 혼란속에 정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정신적 요소들이 파괴된데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잘살아 보세』라는 국가적 목표도 없어졌고 『한번 해보자』는 국민적 정열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국민적 공감대와 단결이 파괴됐다는 점이다. 기업은 정부와 근로자들을 원망하고, 근로자들은 정부와 기업을 비난하며, 정부는 기업과 근로자들을 나무라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서로 비난 하면서 단합을 깨고 갈등과 원망을 키우고 있다.
국가를 통합하고 국민을 단결시키는 것은 정치가들의 임무다. 국가에 비전이 없고 국민들이 동서로 남북으로, 계층별로 집단별로 세대별로 뿔뿔이 흩어져 서로 헐뜯으며 단결을 못하는 것은 정치인들 탓이다. 지난 10여년은 정치인들만의 황금세월이었다. 공화계 민정계 민주계 등등 권력을 못잡아본 정파가 거의 없다. 정치인들은 돌아가며 정권을 나누어 갖고 다 같이 권력의 맛을 보면서 민주화라는 이름아래 국가의 목표를 실종시키고 국민적 단합을 깨면서 30년 공든 경제탑을 무너뜨렸다. 나라의 도덕적 황폐와 국민들의 정신적 피폐에 대해 정치인들은 가장 뼈아픈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단계의 성장 발전을 위해 신사고(新思考), 새 전략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더 정신의 힘은 절실하다. 자원과 자본과 기술이 빈약하다는 우리의 국가적인 숙명, 사람의 힘과 정신의 힘이 절대적인 우리 경제의 기본조건은 변함이 없다. 우리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정신의 힘이 필요하다. 국가적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국민의 힘을 한곳으로 모을줄 아는 정치적 리더십이 아쉽다.
한국사람들의 혼을 일깨우고 애국심에 불을 붙여서 국민들 사이에서 거대한 힘이 솟구치게 해야 한다. 그 일을 정치가 해주어야 한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정치판에 새바람이 불어야 한다. 정치의 정화와 개혁이 경제살리기를 위한 선결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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