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정치현안과 관련된 문건들을 작성해 여권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번지고 있다. 안기부와 여권은 이에대해 통상적인 국정보좌 행위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드러난 문건내용으로는 설득력이 희박하다. 특히 이번 파문은 김대중정권의 도덕성에 근본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중대사안이라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정부출범 5개월도 채 못돼 스스로 이런 시비에 싸인 것은 더욱 실망스러운 일이다.여권은 이 문건들이 국가최고 정보기관으로서 안기부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보좌하기 위한 정책보고서라고 주장한다. 정치공작이나 정치개입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건들이 다루는 인사 예산의 지역편중문제 등은 가히 첨예한 정치공방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국가안보가 근간인 안기부의 업무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안기부의 정치 불개입이란 여야의 정치영역에 대해 거리를 두는 정치중립을 견지해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도 문건내용중에는 「언론사 사주와 간부에게 협조를 요청해 국민오해를 불식토록 하라」는 대응방안 등이 포함돼 있어 정치개입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옹색해 진다.
이번 파문에서 이어지는 논란은 안기부의 정치관여를 금지한 안기부법 위반여부이다. 당장 야당이 안기부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등 가뜩이나 뒤숭숭한 정국은 또하나의 혼란 요인을 안게돼 우려된다. 정부쪽 설명대로라면 안기부는 대통령에게 국정을 보좌하면서 어느 선까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정보좌행위와 정권강화행위의 경계를 엄밀히 구분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건내용중 6월 지방선거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는데다 이 문건들이 청와대를 통해 국민회의로까지 전달됐으며 여권이 지역편중문제와 관련, 문건과 유사한 논리를 펴온 점 등을 간과할 수 없다. 이로 미뤄 이 문건들은 여권내부에서 두루 검토되고 대야(對野)반격용으로 실제 활용된 흔적이 있다. 적어도 명백한 것은 여야의 정치공방에서 안기부가 야당에 대한 비판 및 반박논리를 스스로 개발, 이를 여당에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안기부는 정치공작과 정치사찰 등으로 점철된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기위해 부명과 부훈까지 바꾸면서 개혁작업을 단행한 바 있다.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로 북풍공작사건의 엄정한 단죄를 벌였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파문에 대해 『한두마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안기부의 정치중립이라는 정권 최우선과제에 여권내부가 벌써부터 불감증, 나아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음을 자인하는 말로 들릴 뿐이다. 안기부와 여권은 해명과 부정 일변도에서 벗어나 깊이 반성하고 필요한 후속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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