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찬란한 투혼처럼 우리도 이겨내리라”/US오픈 역전쾌거에 온국민이 감동/PC통신서도 “물속 맨발스윙 뭉클”/“18번홀 위기탈출 IMF 우리 보는듯”이제 겨우 21살인 박세리는 그 또래답게 자주 투정을 부렸다. 『아빠, 내 다리 보기 싫지』 그럴때마다 아버지 박준철(朴埈喆·48)씨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네 다리가 세상에서 최고야』
TV화면에 비친 박세리의 다리는 그녀의 투정처럼 예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 또한 거짓이 아니었다. 검게 그을린 근육질의 그 다리는 「프로」의 다리였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는 튼튼한 다리.
7일 새벽 박세리의 우승은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연장라운드에 들어가자마자 위기가 닥쳤다. 5번홀까지 무려 4타차로 뒤진 것이다. 이 정도면 「이미 승부가 났다」고 보는 것이 상식. 밤을 새우며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국민들이 하나 둘 TV를 껐다.
그러나 박세리는 『많이 뒤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긴다는 생각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경기후 당시의 마음가짐을 밝혔다. 그리고 끝내 고비를 넘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고비가 닥쳤다. 연장 마지막홀인 18번홀. 박세리의 티샷이 워터해저드 옆 깊은 러프에 빠졌다. 갤러리는 물론이고 골프전문가, 보도진 등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이젠 끝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 최대의 스포츠TV채널 ESPN은 이 순간 우승자로 단정한 추아시리폰의 부모얼굴을 클로즈업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 박세리만큼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솔직히 잘 몰랐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박세리는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었다. 캐디의 팔을 잡고 조심스레 물속으로 들어갔다. 장딴지까지 오는 물에 단단히 버티고 서서 페어웨이쪽으로 회심의 샷을 날렸다. 그리고 극적인 보기로 재연장전격인 서든데스로 끌고갔다. 진정한 승부는 여기서 이미 끝났다.
7일 하루종일 전국에서는 어디서나 박세리가 화제였다.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새운 사람들로부터 기막힌 반전과 역전의 감동을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관전을 포기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골프를 잘 모른다는 회사원 김태관(金泰寬·34·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씨는 『우승과정이 너무나 극적이었다』며 『연장전 초반의 어려움부터 18번홀에서의 기적적인 위기탈출까지 마치 힘든 IMF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할 바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주부 장희순(張喜順·42·강남구 개포동)씨는 『새벽 실황중계를 녹화하지 못해 오늘 TV 재방송을 녹화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며 『21살의 어린 선수가 부도와 실업사태 등으로 힘겨운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과 힘을 주었다』고 말했다.
컴퓨터통신에서도 이날 새벽의 감동을 나누려는 통신인들의 글이 앞다투어 올라왔다. 나우누리 강승방씨(Wink43)는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서 공을 쳐내는 모습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글을 올렸고 유니텔 이상배씨(jejoodo)는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고 이 순간 한국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감격을 털어놨다.<최성욱·최윤필 기자>최성욱·최윤필>
◎대전시,박세리배 골프대회 열기로
박세리의 쾌거를 기념하는 골프대회가 열릴 전망이다.
홍선기(洪善基) 대전시장은 7일 『대전의 딸이 세계 골프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한 것은 시민의 긍지를 드높인 장한 일』이라며 『언론기관과 공동으로 초중고 일반부를 망라한 박세리배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홍시장은 또 박세리가 귀국하는 9월에 시민환영대회를 열고 박세리를 대전을 빛낸 인물로, 아버지는 자랑스런 아버지로 선정해 시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전시는 이날 박선수의 우승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시청등 주요 도로변에 내걸었다.<대전=최정복 기자>대전=최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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