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예비실업자 17만명 전망/“취업재수생 신분 면하자” 휴학 급증대학졸업반 학생들이 유례없는 「잔인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퇴출과 정리해고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반기공채를 포기, 「준비된 실업예비군」이 된 이들은 취업의 희망조차 갖기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살아남기 위한 고통스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4,699석은 방학인 요즘에도 오전 8시까지는 도착해야 간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을만큼 붐빈다. 4학년1학기에 휴학했다는 이정민(李正閔·26)씨는 『앞길이 막막하지만 다른 뾰족한 수는 없고 집에 있자니 불안감만 커진다』며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도서관에라도 나와 앉아 있어야 안심이 된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비슷한 규모의 연세대 중앙도서관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러나 오전10시가 넘으면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김모(25·신방4)씨는 『졸업반학생 모두가 습관처럼 책을 뒤적이지만 취업의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과거 그 많던 취업준비 스터디그룹도 거의 사라졌고 교내게시판과 PC통신 등의 취업정보를 혼자 뒤지고 다니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전국 4년제대학의 내년도 졸업예정자는 23만여명. 이중 유학및 군입대, 대학원진학 등을 제외한 17만명이 당장 교문을 나서며 여기에 취업재수생 15만명을 합하면 총 취업대기자는 32만여명이 된다. 그러나 외국인회사 몇 곳만이 극소수 채용계획을 갖고 있을 뿐이어서 이들 대부분이 아무 대책 없이 거리를 방황하게 될 형편이다.
이 때문에 당장의 실업을 피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취업재수생 신세를 면하기 위해 무작정 휴학하고 보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대는 사법고시를 위해 의도적으로 1, 2년씩 졸업을 늦추는 학생들이 급증했다. 올해 2월에 졸업했어야 할 법대 94학번 입학생들의 경우 현재 재학생은 280명이나 된다. 지난 2월 정상적인 졸업생 수가 32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연세대의 경우 4학년 휴학생이 1,002명으로 지난해보다 21%나 증가했고 고려대도 여름방학 중 휴학계를 낸 졸업예정자들이 21.8%나 늘어났다. 이들 상당수는 전공과 관계 없이 고시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거나 아예 낙향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문에 고시나 공무원시험,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원들만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여대와 지방대생들의 고통은 더욱 심하다. 이화여대 공대 4학년 이모(23·여)씨는 『대학원 조교자리의 경쟁도 치열해져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기도 쉽지 않다』며 『학부과정 휴학생도 늘어나는 현실에서 대학원을 도피처로 삼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서울대 취업정보실 김태수(金泰洙·38)씨는 『현재 대학 4년생들의 취업적체가 더해지는 내년에는 더욱 엄청난 취업난이 예상돼 고급인력이 대규모로 사장될 위기에 처해있다』며 『국가적으로도 고급인력 흡수를 위한 사회적 보조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김호섭·이상연 기자>김호섭·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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