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차 신고 2일만에 수리 ‘번개작전’/YS “세계화시대 경쟁 최대한 촉진” 무역의날 치사/김철수 상공도 “시장기능에 맡겨야” 일거에 방향전환/‘YS김현철정치인부산시민’ 정치논리가 승리한 셈94년 11월30일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전자 자동차 기계 등 우리의 주력산업은 이제 세계시장에서,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우리의 산업정책도 국내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에 도전하고 세계시장을 경영하는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내에서부터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최대한 촉진할 것입니다』
31회 무역의 날 기념식사였다. 삼성승용차의 허용문제로 민감하던 시기에 나온 이같은 김대통령의 공식 발언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에 대한 승용차를 허용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시 상공부 실무자. 『이는 분명 삼성승용차를 겨냥한 발언이었습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모든 작업은 삼성에 승용차를 허가해 주는 방향으로 공식 전환하기 시작했지요. 그때까지 완강하게 삼성의 승용차 진입을 반대하던 김철수(金喆壽) 장관도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전혀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삼성승용차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분명하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하지만 무역의날 열흘전부터 였다. 시드니 아·태경제협력체(APEC) 지도자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하는 비행기내. 『국경없는 세계화시대 아닌가.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면 삼성승용차를 허가해야 할 것 같은데 한수석(한이헌·韓利憲 경제수석)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대통령은 수행 각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이렇게 불쑥 말을 건넸다. 한수석. 『그렇습니다.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공장을 짓겠다고 할 때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 기업이 짓겠다는 걸 막아서야 되겠습니까』 「나이키 신발소동」(김대통령이 조깅때 나이키 신발을 신은 것) 이후 김대통령과 한수석은 이미 삼성승용차에 대해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김대통령이 그동안 지켜온 삼성차 불허방침이 완전히 방향을 바꾼 것으로, 한수석 취임 40여일만이었다.
삼성승용차 문제는 한수석이 경제수석으로 자리잡으면서부터 그 방향을 바꿀 것으로 예상됐었다. 한수석은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기획원차관으로 있을 때 『재벌의 선단식 경영은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경쟁이 제한된 것』이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갖고 있었다. 이같은 논리라면 삼성차 허용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한수석 밑에서 일했던 A씨. 『한수석이 등장하면서 삼성차 문제에 상당한 변화조짐이 뚜렸했습니다. 당시 이미 부산지역에서는 승용차 허용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으며 부산출신인 한수석의 허용쪽 입장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지요』
김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수 정치인들이 삼성승용차 허용을 내놓고 말하고 있었다. 청와대 박관용(朴寬用) 비서실장도 삼성차 허용을 강력 주장했다. 박의원의 회고. 『삼성승용차는 사실 부산시민들이 결정한 것입니다. 삼성이 배후에서 작용한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부산시민들의 유치요구는 강력했습니다. 한번은 부산에 가서 민심을 좀 알아보려고 택시를 탔어요. 몇마디 물어보니 택시운전수가 욕하고 난리예요. 대통령을 만들었더니 공장을 유치해도 시원치않을 판에 온다는 공장도 막고 있으니 도대체 뭐냐는 거였지요. 경제논리는 모르지만 정치논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산시민들이 이 정도로 대통령에게 험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형우(崔炯佑) 의원이나 문정수(文正秀) 사무총장 등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모두들 부산시민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수석이 와서 어떻게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안된다던 경제논리를 된다는 정치논리로 바꾸었습니다』
사실 삼성차의 허용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 판단의 가장 앞자리에 김대통령이 있고 그 뒤로 김현철(金賢哲)씨가 있으며 부산지역출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들이 부산시민들을 등에 업고 뒤에 도열한 그림을 상정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 A씨. 『김대통령의 바로 뒤에 현철씨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때에도 가장 지근에 있었으며 역설적으로 찬성에도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겁니다. 김대통령이 삼성차에 대해 반대입장을 한치도 굽히지 않은 것이나 일거에 찬성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배후에는 현철씨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지요』 이와관련, 삼성차 허용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관계기관의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의 동서인 도재영(都載榮) 당시 기아자동차써비스회장과 김대통령의 사돈인 김웅세(金雄世) 롯데월드 사장의 영향력을 회고했다.
『김대통령이 완강하게 반대하던 배경에는 도회장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했다. 기존 자동차업체들은 삼성의 출현을 찬성할 리 없었고 여기에 기아가 가장 앞장섰다. 도회장이 기존 차업계와 기아의 정서를 현철씨와 김대통령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전함으로써 김대통령의 완강한 반대입장 논리를 제공했다. 반면에 롯데 김사장은 부산정서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전했다. 더구나 10월들어서 롯데 김사장은 청와대 식사에서 삼성차 문제를 적극 화제로 떠올려 허용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김대통령이 결국 삼성차 허용쪽으로 결론을 맺도록 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은 김사장과 현철씨에게서 마련됐다』 삼성차가 허용되도록 하는 관계자들의 도열대형에서 현철씨의 좌우에 도회장과 김사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들이 김현철김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결정라인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
김대통령이 삼성차 허용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이를 강력 시사한 뒤부터 삼성차허용문제는 일사천리였다. 12월1일 박운서(朴雲緖) 상공차관은 몇몇 기자들에게 『정부내에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내려졌다. 삼성의 기술도입신고서가 들어오는 대로 관련절차를 마칠 방침이다』며 삼성승용차 허용사실을 공식화했다.
다음날 박차관은 기자간담회까지 가졌다. 『삼성에게 기존업계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다. 업계의 경쟁력 제고차원에서 기술도입신고서를 처리할 방침이다. 세계화구상에서 밝혔듯 기술제휴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겠다는데 막을 명분은 없다』
기존 자동차사들이 파업불사를 선언하고 대대적으로 반대하고 노조원 2,000여명은 시위까지 벌였으나 이미 대세는 결정된 상태였다. 4일 삼성차에 대한 정부방침이 공식 확정됐고, 다음날 삼성은 기다렸다는 듯 기술도입신고서를 상공부에 제출했다. 상공부는 접수 이틀만인 7일 이를 전격 수리했다. 삼성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승용차사업은 이렇게 그야말로 「번갯불 작전」에 의해 이루어졌다.
번갯불 작전의 삼성쪽 야전사령관은 「마누라와 자식빼고는 모두 바꾸라」며 김대통령의 개혁과 방향을 같이한 이건희(李健熙) 회장이었다. 삼성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작전은 부산과 정치권을 움직였고 급기야 청와대까지 마음을 돌려놨다.
이 일이 있고나서 정부의 기존 산업정책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삼성차 기술도입 신고서를 수리한 뒤 가진 김상공장관의 답변. 『삼성차의 허용이 단기적으로는 기존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며, 장기적으로는 경쟁을 통해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민간투자는 기업과 시장기능에 맡겨야 합니다. 중복과잉을 이유로 신규진입을 막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정부의 기능은 기술발전과 지역균형발전, 환경보호 등에 국한할 것입니다』<이종재 기자>이종재>
◎삼성의 각서/부당 인력스카우트 자제/부품산업 기반 조성/98년 수출비율 30%/2003년 독자모델 개발
삼성은 승용차 기술도입신고서와 함께 각서를 제출했다. 이필곤(李弼坤) 삼성21세기기획단 회장과 경주현(景周鉉) 삼성중공업 부회장이 함께 서명하고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확인서명을 한 것이다.
삼성은 이 각서에서 기존업계에 대한 부당스카웃을 자제하고 부품산업의 기반을 자체적으로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은 각서의 전문.
삼성은 승용차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삼성그룹의 명예를 걸고 94년 12월5일 정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합니다. 특히 아래사항에 대하여 철저히 준수토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정부의 어떠한 불이익 처분도 감수할 것을 각서합니다.
1.수출비율:98년 30%, 2000년 40%, 2002년 55%
2.국산화비율:2,000㏄ 미만은 생산개시년(98년)부터 80% 이상 달성. 2,000㏄ 이상은 생산개시년(98)부터 70% 달성
3.기술자립화:생산개시(98년) 6년차(2003년)부터 삼성 독자의 엔진 T/M(트랜스미션) 샤시를 탑재한 독자모델 개발
4.부품기반의 조성:현재의 상용차 부품업체를 집중 육성해 활용. 삼성그룹의 전자 전기 기계분야의 부품업체 활용. 독립계열업체 생산부품과 범용성 부품으로서 기존업체에 영향을 주지않는 범위내에서 공급을 희망하는 업체로부터 부품조달. 부품의 조달과 관련하여 기존 완성차업체와 계열 부품업체에 피해가 없도록 하고 이들에 의한 이의제기시 상공자원부장관의 중재를 받도록 함
5.기존업체의 인력스카우트 배제:기존업체의 현직 및 향후 퇴직자중 2년이 경과하지 않은 인력의 채용배제. 삼성그룹 자동차 관련 계열부품업체가 기존 완성차업체의 부품업체로부터 인력을 스카웃하지 않도록 권유를 하고 이들에 의한 이의제기시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겠음 1994.12.6.
각서인:21세기 기획단 회장 李弼坤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景周鉉
상기사항을 확인함. 삼성그룹 회장 李健熙
위 각서인 이외의 법인이 승용차사업을 영위하게 될 경우에는 해당 법인으로 하여금 위 각서의 내용을 준수토록 조치를 취하겠음.
상공자원부장관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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