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쎄실 대표작 ‘취리히 세계연극제’ 호평/고문에 유린되는 여성통해 현대의 획일·전체주의 고발/“시종긴장 낯선세계 체험”/관객들 반응에 가능성 확인충돌은 새로운 탄생을 예고한다. 극단 쎄실의 충격적인 대표작 「산씻김」(이현화 작, 채윤일 연출)이 취리히 세계연극제에서 스위스인들을 만났다. 일본에서 공연한 적은 있지만 서구 관객과의 대면은 이번이 처음. 문화충돌과 긴장은 미리부터 예상될 수 밖에 없었다. 「산씻김」은 한 여성이 이유없이 당하는 고문을 질기게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에도 횡횡하는 전체주의와 획일화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대사가 적다는 것은 외국관객을 만날 때 장점이 되지만 과연 군사쿠데타와 광주민주화운동같은 체험이 없는 이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있게 다가갈까가 과제였다.
2일 오후 8시 취리히 노이마르크극장. 150여명의 관객중 3분의 1은 교민, 나머지는 현지인들이었다. 하지만 1시간20분동안 무대위에서는 고문당하는 자와 고문하는 자들간의 긴장이, 무대 밖에서는 전혀 다른 문화권의 충돌이 새로운 세계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낯선 공연에 대해 문화와 언어가 다른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 또 하나의 창작이 이루어졌다.
불이 꺼지고 영어로 뉴스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조용했다. 그러나 전화를 빌리러 들어온 한 여자(이미정)가 엄숙한 표정의 여사제(하도희)와 소녀 4명에 의해 묶이고, 옷이 벗겨지고, 벌레가 온몸에 뿌려져 고문당하는 의식이 진행되자 「이게 뭐지」라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관객들의 몸은 점점 앞으로 쏠리고, 표정은 굳어졌다. 초반에 「CLOSED」라 씌어진 팻말을 꺼내 걸 때 터져나오던 웃음도 사라진지 오래다.
공연을 본 토마스 그뤼에블레씨는 『마치 전혀 모르는 낯선 세계를 체험한 듯하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기(배)에서 뭔가를 느꼈다』며 『남녀 관계, 강요종속의 문제로 대입해 보았다』고 말했다. 느린 움직임과 구음(口音)에 긴장과 강한 에너지를 절감했다는 반응이 대체로 많았다. 『두 문화의 충돌에서 순치되는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는데 연출자 채윤일씨는 『바로 원작의 의도』라며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취리히 세계연극제 예술감독 우르스 비르셔가 『「산씻김」은 다소 충격스럽지만 생각할 여지를 준다』고 초청이유를 설명한 것이 어느 정도는 적중한 셈이다. 낯선 문화권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은 일단 높이 살만하다. 극단 쎄실은 3일까지 이틀간의 취리히 세계연극제를 마치고 제네바, 라쇼드퐁, 벨린조나등 스위스 3개지역을 순회 공연한다.<취리히=김희원 기자>취리히=김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