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이 지난 주 프랑스문화원에서 「한국의 문화주체성과 경제위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문화적 부가가치」를 강조했고 이것이 흥미로웠다.기 소르망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난국을 맞아 경제학자들은 그 본질을 경제에서만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경제가 모든 것을 설명하며 경제는 독자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한국의 경제발전은 문화적인 바탕의 표현일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을 특징지워온 것은 신유교주의요 이것이 사회의 모든 면을 지배해왔다고 그는 분석한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체제가 유교주의를 강요했고 국민들이 다른 형태의 모델을 찾는 것을 저지했다. 유교주의는 경제분야에서 재벌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아무 특성도 차별성도 없는 유사한 상품의 대량생산이었다. 이것은 생산에 있어서의 전제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정치가 독재에서 민주화로 바뀐 것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개인주의와 다원주의의 발로라고 그는 생각한다. 개성없는 상품을 생산하던 경제체제도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지금 세계시장에서는 각국이 상품과 함께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팔고 있다.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국가들은 저마다 수많은 문화적 이미지가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아무 이미지가 없다. 「문화적 부가가치」로서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술인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예술인들은 「문화적 부가가치」창출에 절대적으로 공헌한다. 한국인은 예술창조에 활력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기 소르망이 경고하는 것은 경제난이라 하여 예술을 뒷전으로 돌리기 쉽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예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경제전문가들이 경제적인 안목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석하는 사이 「문화적 부가가치」를 활용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그의 충고에 귀가 기울여진다.
기 소르망의 이날 강연회에서 무엇보다도 감명적이었던 대목은 한 청중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였다. 그는 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끌고 북한을 방문한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예술적 성격을 띤 하나의 사건이었다. 어떤 예술가도 그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주 비상한 상상력이다. 그 연출은 하나의 설치미술이었다.』
듣고보니 그렇다. 소 500마리를 실은 50대의 수송트럭이 기다랗게 꼬리를 물고 막 개통한 통일대교를 일렬로 지나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다.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의미의 크기에만 감동했다. 한 출향소년의 위대한 귀향에 황홀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장면 자체가 하나의 장대한 드라마요 그 행위 자체가 하나의 전위적 미술행위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기 소르망은 그 속에서 예술성을 발견한 것이다. 예술이므로 그렇게 감동적일 수 있었다.
기 소르망의 미학적 시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준다. 한 기업인의 기발한 착상은 예술가의 경지였다. 어떤 예술가보다 위대한 창조성의 발휘다. 이럴때 대기업인은 대예술가다.
다니엘 벨은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이란 저서에서 『기업가와 예술가를 다 같이 자극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끊임없는 충동이다』라는 말을 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와도 같은 창의력 없이 기업가는 성공하지 못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성공은 그 창의력의 승리였고 또 그 창의력의 화려한 전시아래 금의환향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와 문화의 접점(接點)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새로운 도전은 예술정신이다. 니체가 과학을 예술가의 광학(光學) 아래서 보았듯이 경제를 예술가의 광학으로 조명할 수 있다. 대립개념으로 만 여겨져온 경제와 문화는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문화적 부가가치」가 경제를 구제한다.<논설고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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