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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독재외압 견뎠지만 재정난 앞엔…/통일문제연구소 문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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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독재외압 견뎠지만 재정난 앞엔…/통일문제연구소 문닫아

입력
1998.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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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재야통일운동 요람/백기완씨 “더 이상 못버텨”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 통일연구단체인 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의 「통일문제연구소」(소장 백기완·白基玩·66)가 최근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끝내 문을 닫았다. 백소장은 30일 『30여년을 통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온갖 수난을 이겨내며 연구소를 지켰으나 이제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67년 고 장준하(張俊河) 선생, 백씨 등의 발기로 「백범사상연구소」로 출범한 이 연구소는 서울 충무로 등을 전전하다 88년 국민 30여만명의 성금으로 현재의 건평 43평짜리 단층 한옥에 자리잡았다. 지금도 연구소에는 당시 성금을 냈던 국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연구소는 70, 80년대 유신반대, 통일, 민주화운동 등 한국재야운동의 요람이었다. 70, 71년 백씨와 시인 김지하(金芝河)씨, 정성헌(鄭聖憲)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장 등이 벌인 민족학교 운동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연구소가 발간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앎과 힘」 「백범어록」등 30여권의 서적은 재야 운동의 지침 역할을 했다. 때문에 연구소는 5차례에 걸쳐 강제 폐쇄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연구소는 지난해말 이후 백씨가 건강악화로 거의 들르지 못하면서부터는 아예 인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곳이 됐다. 최근에는 「마지막 자원봉사자」 채원희(蔡元熙·28·여)씨마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입건돼 전화받을 사람조차 없게 됐다.

80년대 연구소에 관여했던 환경운동연합 최열(崔冽) 사무총장은 『금강산관광까지 눈앞에 둔 지금 정작 통일운동의 본거지는 문을 닫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이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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