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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大와 민주화/100년 역사 ‘中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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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大와 민주화/100년 역사 ‘中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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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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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대자보가 천안문 기폭제로중국에는 「베이징(北京)대가 조용하면 중국이 편안하다」는 말이 있다. 반체제, 민주화사조가 학풍으로 자리잡아 중국 민주화운동의 선두에는 늘 베이징대학이 있었다.

29일 클린턴 대통령이 베이징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베이징대는 대아지당(大雅之堂·최고로 고상한 집)의 본분을 다하면서 백년의 역사 속에 중국의 양심을 대변했다.

베이징대 하면 떠오른 것이 천안문 사건 당시 민주화 운동의 기수 왕단(王丹)이다. 89년 4월 베이징대 우체국과 상점 등이 모여있는 앞 100 ㎡「삼각지 언론광장」 게시판에 나붙은 후야오방(胡耀邦)재평가 대자보는 6월 민주화폭풍의 기폭제가 됐다. 그후 베이징대 입학생은 수년간 1년여동안씩 군에가서 반정부 기질과 민주화의식 약화를 위한 사상개조를 받아야 했다.

베이징대의 반골기질은 청조부패타도를 외치고 나온 1898년 경사(京師)대학당의 설립취지부터 뿌리를 갖고 있다. 그후 1919년 5·4운동, 1935년 내전반대운동, 89년 6·4천안문 사태 등 금세기 중국 민주화 운동 선두에는 베이징대가 있었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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