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은 장사하다 날리고 농사는 소금바람에 망쳐/생계막연한 주민들 사이엔 불신·반목만 점점 늘어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훼손은 단지 환경파괴 뿐 아니라 주민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낳는다. 인류학자들이 최근 이같은 현상에 주목, 시화호개발을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접근한 보고서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한경구(韓敬九) 강원대 교수, 박순영(朴淳英) 서울대 강사, 주종택(朱宗鐸)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연구원, 홍성흡(洪性翕) 전남대 교수 등 인류학자 4명은 96년 12월부터 지난해말까지 1년간 시화호주변 4개마을에서 벌인 조사를 토대로 현장보고서 「시화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완성, 28일 연구의뢰기관인 환경운동연합산하 시민환경연구소에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화성군 송산면 고포4리 어도와 독지3리 형도의 주민 71가구는 주생업인 굴양식 및 채취를 못하게 된데 대한 보상금을 포함, 가구당 2,000만∼1억원을 받았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외지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나 경험부족 등으로 90%가 실패하고 대부분이 현재 구멍가게 등 영세자영업으로 생계를 잇거나 수위 청소 배달 등 주변부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장사에 실패하거나 도시빈민생활을 견디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웃을 본 나머지 절반의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는 것을 포기하고 농업을 시작했다. 형도와 고포1리 마산포는 포도, 지화2리는 영지를 주작목으로 심어 시화호 준공 첫해인 94년에는 상당한 수확을 거뒀다.
그러나 95년 봄 시화호에서 물을 빼 갯벌이 육지로 변하면서 땅을 온통 뒤덮은 소금이 바람을 타고 마을로 날아들어 농사를 망쳐버렸다. 95년에는 수확이 30∼40% 줄었고 96년에는 60%나 감소했다.
이렇게되자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게 된 주민들은 새삼 보상금이 너무 적었다든가, 또는 여전히 보상받을 것이 남았으리라는 인식을 갖게되면서 잇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주민들은 또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을 당시 주민대표들의 무능 탓으로 돌리거나 심한 경우 일부 주민대표들의 개인비리까지 의심하게 되고 결국 이같은 불신과 반목은 마을공동체의 와해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대표집필을 맡은 한교수는 『5,000여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시화호 개발은 단순히 커다란 썩은 호수만을 남긴 것이 아니다』라며 『건강하게 생업을 영위하던 주민들을 경제적으로 무기력하고 정신적으로 의존적이며 사회적으로도 파편화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이은호 기자>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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