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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학의 정신적 支柱/26일 타계 巴城 설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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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문학의 정신적 支柱/26일 타계 巴城 설창수

입력
1998.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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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정체성 확보에 평생/일제때 독립운동으로 옥고도26일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독립운동가이자 영남문학의 원로 파성(巴城) 설창수(薛昌洙)옹은 민족정신을 구현한 시작활동과 향토문화의 정체성 확보에 평생을 바쳤다.

1916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설옹은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항일비밀결사대 외교부장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당시 그는 항소심에서 일본법관들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시(詩)가 거짓말을 할 수 없듯이 나 역시 단군의 자손임을 거역할 수 없다』며 굽히지 않아 원심 보다 6개월 늘어난 징역 2년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광복후 우리나라 예술제의 효시인 진주 개천예술제를 창시, 제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예술제를 이끌어 왔다. 46년에는 최초의 민간 지방신문이었던 진주 경남일보 주필과 사장으로 일했으며 장면(張勉)정권시절인 60년 참의원을 지냈다.

설옹은 창작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 1,000여편에 달하는 시와 수필, 100여편의 희곡을 남겼다.

「문인에게 시작(詩作)은 인생의 숙제」임을 강조해온 그는 76년 회갑을 맞아서야 동료들의 끈질긴 권유로 첫 시집 「설창수시선(詩選)」을 출간했고 86년 고희(古稀)때 시집과 수필·희곡집을 묶은 「설창수전집」을 냈다. 92년 11월에는 시집 「나의꿈 나의조국」을 출간했다. 90년 「파성문학상」을 제정, 후배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해오던 설옹은 조국사랑의 열정만으로 전국을 돌며 시화전을 225차례나 열었던 「대쪽시인」이었다.<진주=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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