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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부스 옴니아(金聖佑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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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부스 옴니아(金聖佑 에세이)

입력
1998.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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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鄭鎭奭) 대주교가 오는 29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만 30년동안 지켜온 자리의 교대다. 지난 달 29일은 마침 명동성당이 축성 10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김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재임기간 동안은 특히 70년대 이후 명동성당이 한 종교의 본당(本堂)일 뿐아니라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성지(聖地)가 되어왔다. 이제 반독재구호의 퇴조와 함께 김추기경이 은퇴하고 새로운 시대의 종교적 소명을 안고 정대주교가 명동성당에 들어앉는다.양심은 항상 여리고 정의는 항상 외롭다. 양심과 정의는 어느 시대에나 위협당하기 쉽다. 양심의 기지로서, 정의의 보루로서 종교에 기대는 것은 신자들에게만 주어진 특전이 아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정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에 기대를 건다.

정대주교는 착좌에 앞서 자신의 문장(紋章)을 공개했다. 이것은 청주교구장 주교때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쓰면서 양옆의 장식술을 대교구장의 것으로 약간 바꾼 것이다. 이 문장의 맨 아래에 새겨진 말이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말은 정대주교가 청주교구장 주교때부터 사목(司牧)의 모토로 삼아온 것이다.

대주교나 주교들은 대개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모토를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다. 가령 김수환 추기경의 모토는 「프로 보비스 에트 프로 물티스(Pro Vobis Et Pro Multis)」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 번역한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한 성경의 말중 「많은 사람을 위하여」에서 딴 것이다.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모토는 「토투스 투우스(Totus Tuus)」. 「온전히 당신 것」이란 뜻이다. 루이지 그리뇽이란 성인이 쓴 「성모에 대한 봉헌」이란 책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정진석 대주교의 「옴니부스 옴니아」는 사도바울의 서신중에 나오는 말이다. 서신중의 하나인 신약성서의 고린도전서 9장22절은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로 되어있다. 여기서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영역성경에서는 『I have become all things to all men』이요 이 『all things to all men』이 Omnibus Omnia다. 이것은 같은 고린도전서 10장33절의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라는 구절과 상통한다.

정대주교는 이 모토를 정한 연유에 대해 청주교구청을 통해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6·25를 겪으면서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 다시 얻은 생명이라 여기고 그 생명을 온전히 모든 이에게 나누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신학교에 들어갔고 주교로 피명될 때 이것을 모토로 삼았다.』

정대주교는 6·25때 3개월동안 적치하의 서울에서 고생하다가 1·4후퇴때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6·25가 발발하던 날 로마에서 시성된 마리아 고레티성녀에 관한 책을 읽고 이에 감동하여 신학교를 택했다. 주교로 피명된 것이 우연히도 70년 6월25일이어서 6·25와의 인연이 깊다. 6·25로 다시 얻은 생명이 48년후 6·25를 맞는 달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고 착좌하게 되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신임 서울대교구장의 모토는 비단 한 사제(司祭)의 사목지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모든 국민들에게 전하는 천상(天上)의 소리처럼 들린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줄 때다. 적어도 그런 마음가짐이 절실한 때다. 자기 몫이 적은 때일수록 마음을 나누어 가짐은 모든 사람의 몫을 크게 만드는 일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이 성경말씀이라면 「주는 자의 눈빛은 황금처럼 빛난다」고 또 누가 말했던가. 가뜩이나 이기와 사욕으로 서로가 자꾸만 자신을 움켜쥐는 이 시대에 나눔과 베품으로, 연민과 애정으로 마음을 활짝 열자. 그리하여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이렇게 인사하자.

「옴니부스 옴니아」.<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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