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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性愛/이젠 밖으로

입력
1998.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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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잡지 발간·연합체 결성/줄잇는 전문클럽·가두시위…/‘그들만의 모임’을 벗어나 인권운동을 표방하며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지난해초 노동법 파동으로 인한 총파업 현장. 붉고 검은 노동자단체의 깃발 사이로 무지개색 깃발이 올랐다. 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에서 들고 나온 「레인보우」기였다. 동성애자들을 상징하는 이 국제적 깃발을 들고 시위에 참가한 게이·레즈비언들은 100여명. 함께 시위를 벌인 노동자들도, 언론도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96년 네오포커스가 「동성애, 그들만의 세상」(11월9일자)를 다루었을 때만 해도 친목모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던 「그들」의 조직이 이제 인권운동을 표방하고 사회의 물결을 타고 있다. 「그들만의 세상」, 그 이후는 어디인가.

레즈비언 모임 「끼리끼리」는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대선 주자들에게 동성애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는 질의서를 보낸 적이 있다. 이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당시 야당 후보로부터 공식 답변도 받았다. 내용도 예상을 넘어 「진보적」이었다. 표계산 끝에 보낸 답변서였다면 동성애자 인구를 크게 평가한 것이었고, 그렇지 않다해도 동성애문제에 대한 사회일반의 달라진 인식으로 여길만 했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의견에 대해 지상토론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동성애전문지 「버디」, 레즈비언 잡지 「니아까」등 동성애를 표방한 미디어들도 속속 등장했다. 이 잡지들은 동성애자들의 정보 교류와 인권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지난해 중고교 교과서의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내용 수정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오는 27일은 「세계 동성애자들의 날」. 이날 국내에서는 전국 동성애자 단체 27개가 모여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이하 한동협)를 조직, 출범시킨다. 한동협 출범의 구심 역할을 한 「버디」의 한채윤 편집장(26)은 『동성애자들의 인권 신장과 새로운 동성애자 문화 창조를 위해 전국의 동성애자 단체들이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성애자들은 요즘 목소리를 부쩍 높일 수 있게 됐다. 게이·레즈비언들의 조직이 급속히 늘어난 덕이다. 90년대 초만해도 남성동성애자모임 「친구사이」, 레즈비언 모임 「끼리끼리」등 손에 꼽을 정도였던 동성애 단체들은 95년말 PC통신을 활동장으로 활용하면서 급속히 팽창했다. 대학모임으로는 「마음006」(서울대) 「컴투게더」(연세대) 「사람과사람」(고려대),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하 대동인) 등이 활동중이다. 동성애자들을 위한 153 전화사서함서비스 이용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지역 모임도 많다. 부산·경남의 「같은마음」「안전지대」, 대구·경북의 「대경회」,「와이낫(WHY NOT?」, 광주·전남의 「빛동인」, 대전·충남의 「한울타리」 등. 동성애자 의료인모임 「동의모」, 동성애자 기독인모임 「로뎀나무그늘」등도 있다.

올해 2월 PC통신 유니텔에 「거치른 세상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생기면서 천리안 하이텔 등 4대 통신에 모두 동성애자 모임이 생겼다. 20대 동성애자들이 주축이지만,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통신의 특성 때문에 30,40대 회원들도 많다.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이반(異般)」이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고 전파시킨 것도 PC통신을 통해서였다. 국내 인터넷에도 동성애 전문사이트가 10여개에 달한다.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전문 클럽들도 늘었다. 게이 바는 이제 서울 종로에만 80여군데, 이태원에 10여군데 생겼을 정도로 성업이다. 「라펠」「라브리스」「레스보스」 등, 용어조차 생소했던 레즈비언 바도 서울에 3군데 생겼다.

동성애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대동인 양지용 회장(22·서울시립대)은 『동성애자들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 속에서 무관심과 차별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 여성 등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에 적극적인 것은 인권 회복이란 공동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인권단체에서도 이들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최은아 간사는 『동성애가 옳고 그른가 당위성을 따지기 보다는 현재 동성애자들이 처한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다 소박하게는 그들만의 건전한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주장도 있다. 레즈비언잡지 「니아까」의 홍난영 편집장(24·여)은 『동성애자들의 분위기와 취향, 요구를 반영한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잡지를 창간했다』고 말했다.

「인권」이든 「문화」든, 이제 이들의 목소리는 작지 않다. 물론 여전히 「끼리끼리」만의 소리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다. 동성애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윤리적 논란이 해결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다만 이들은 주류사회의 한귀퉁이에 둥지를 틀고 있다. 얼마나 받아들여질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구태여 따질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김경화 기자>

◎커밍아웃한 박두성씨/“떳떳이 밝히니 속이 후련해요”

박두성(28·레크리에이션 강사)씨는 최근 모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게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동성애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유별난 성(性) 정체성 때문에 고민의 시기를 지낸다. 이 고민을 터뜨리는 「커밍아웃」이 어찌 보면 후련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 사회로부터 오는 저항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5년여동안 준비를 했죠. 친구, 후배들에게 술도 엄청나게 샀어요. 동성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였죠. 그런 뒤에 나의 얘기를 자연스레 꺼낼 수 있었어요. 굳이 「나는 동성애자」라고 말하지 않아도 제 취향을 알아차린 친지들도 있죠. 언제부터인가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닦달도 뚝 그쳤어요』 박씨가 「나는 좀 별나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반 시절. 여자아이들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는 달리 동성 친구들이 더 좋았다. 중학교 때 게이를 다룬 한 잡지 기사를 읽고 「나도 동성애자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고교 때는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심리적 고통이 심했다. 95년 마침내 커밍아웃 했을 때에는 한바탕 고민이 끝나 오히려 마음이 평온했을 때였다. 현재는 PC통신 유니텔의 동성애자 모임 「거치른 땅의 아름다운 사람들」 대표시삽이자 동성애자 기독모임 「로뎀나무 그늘」의 회장으로 활동중이다.

『한참 힘들었을 때는 게이들이 모이는 극장이나 터미널을 찾아다니기도 했어요. 소위 동성애자들의 「음지」라는 곳들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일종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커밍아웃을 하고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동성애자들의 이런 어두운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박씨는 외국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당당히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서도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커밍아웃 없이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관심조차 끌기 힘들죠. 변호사 등 지도층 엘리트급 인사들 중에도 동성애자는 적지 않아요. 소문으로는 다 알아도, 당사자가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나서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죠』

박씨처럼 커밍아웃을 하는 동성애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 대부분 20대 젊은 층들이다. 박씨는 그러나 훨씬 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지금의 40,50대 동성애자들에게 커밍아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에게는 애인 한운산(28)씨가 있다. 거리에서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박씨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흔히 동성애자들이 「문란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운산이하고 사귄 지 벌써 3년이에요. 5주년 되는 2002년에는 결혼식도 올리고 싶어요. 법적으로 인정받기는 힘들겠지만요』<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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