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소한마리로 1,000마리 가져왔습니다”/“고향가게되어 기뻐… 어젯밤 돼지꿈 꾸었다”/환송인파 1,000여명 “소 북행으로 통일물꼬 트였으면”/서산목장 예상치못한 소나기 “牛雨 아니겠느냐”분단극복과 평화를 염원하는 7,000만겨레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이 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정명예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어린 시절 무작정 서울을 찾아 달려온 이 길, 이제 판문점을 통해 고향을 찾아가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제가 열여덟살이던 1933년이후 처음으로 다시 이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인사말을 하며 감격해 했다.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운의 꿈을 안고 세번째 가출을 할때 아버님이 소를 판 돈 70원을 갖고 집을 나섰습니다』라고 회고한 정명예회장은 『이제 그 한마리의 소가 천마리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것입니다』라고 감회에 젖었다.
○…정명예회장과 방북단 일행은 오전 8시께 임진각에 도착, 전날밤 충남 서산목장을 출발해 미리 기다리고 있던 소떼와 합류했다.
임진각 진입로변에서 열린 환송행사장에는 이북5도민회와 미수복 강원도중앙도민회, 강원 통천군민회등 실향민단체 회원들과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해 북녘땅을 밟을 소와 방북단을 배웅했다. 환송행사에서 정명예회장은 연로한 탓인 듯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았으나 손을 흔들어 환송객의 박수와 축하에 답했으며, 소에 꽃다발을 걸어줄때는 감회가 새로운듯 밝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여성단체인 한국근우회원 60명도 흰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환송식에 참가, 정명예회장과 소들의 장도를 기원했고, 인근 평화통일사 윤일선(尹一禪·67) 스님은 소를 실은 트럭을 일일이 찾아 목탁을 두드리며 소들의 평안한 행복과 평화통일을 축원했다.
평북 정주시가 고향이라는 실향민 탁준복(卓俊福·72·서울 용산구 후암동)씨는 『북한주민들도 잘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동포된 의무가 아니냐』며 『정명예회장과 소들의 북행으로 통일의 물꼬가 터졌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정 명예회장과 소들은 임진각 환송행사를 마친 뒤 오전 8시20분께 통일대교를 건너 판문점을 향했다.
통일대교는 지금까지 판문점으로 통하는 유일한 교량이었던 「자유의 다리」를 대신해 새로 건설된 목포신의주간 국도 1호선상의 다리. 정명예회장은 이날 앞으로 남북왕래의 신작로가 될 이 다리를 처음 건너는 영광과 함께 민간인으로서는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는 첫 인사가 됐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이른 아침부터 정명예회장과 소들을 맞을 실무준비로 남·북 양측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명예회장 일행과 소들이 도착하기 30분전부터 판문점 북측지역에는 북한 병사 수십명이 도열, 의전을 갖췄으며 북한기자들도 일찌감치 방송용 카메라 등을 들고 나와 취재에 나섰다. 북한측도 이날 정명예회장의 방북 및 소떼 인도를 생중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측은 평소와 달리 이날은 판문점 구내의 대남 방송용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음악을 틀어 오랜만에 평화분위기를 돋우었다.
○…정 명예회장 일행과 소들은 오전 9시 정각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도착했다. 정 명예회장 일행이 평화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소들은 잠시 인도·인수절차를 기다린 뒤 곧바로 먼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으로 들어섰다. 대한적십자사측은 이에 앞서 오전 8시40분께부터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북한 적십자측과 각 5명씩의 연락관 접촉을 갖고 방북자 명단과 소의 검역증 등을 건네주었다.
○…소를 실은 트럭행렬 50대중 1호트럭이 군사분계선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6분. 소 8마리를 싣고 첫 트럭이 도착하자 북측 인수요원들은 군사분계선상에서 차를 잠시 세워 소의 숫자와 상태등을 점검한 뒤 곧바로 통과시켰다. 이어 36호차까지 잇따라 차량이 통과한뒤 1분여정도 차량통과가 중단됐다가 다시 50호까지 순조롭게 통과가 이뤄졌다.
오전 9시30분께 소이 인도절차가 마무리되자 양측 적십자 관계자들은 다시 중감위 회의실 동편의 군사분계선상에서 박병대(朴炳大) 남측단장과 임순일 북측단장 명의로 된 인도인수증을 최종교환했다. 박 남측단장이 『소를 빨리 키워 새끼를 많이 낳아 식구가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기원하자 임북측단장은 『잘 키우겠다』고 응답했다.
○…서산농자에서부터 소떼를 몰고 온 트럭운전사들은 북한측 운전사들에게 차량을 넘겨준 후 중립국감독위 회의실과 군사정전위 회의실 사이 통로를 통해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돌아왔다. 한 운전사는 『소를 싣고 북측에 넘어가니 북한여성 10여명이 냉면을 준비해 놓고 「먼길 오느라고 시장할테니 먹고 가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북한측은 이날 소 운반차량을 운전한 남측 기사들에게 백두산 들쭉술 1병, 인삼곡주 1병, 려과(필터)담배 1보루씩을 선물로 제공했다.
○…정명예회장 일행은 판문점 중감위 회의실 남측 출입구를 들어선 후 오전 10시 정각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땅에 발을 내디뎠다. 정명예회장은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방북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향 땅을 밟게 돼서 반갑다』고 짤막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날 북측에서는 송호경(宋鎬京)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비롯, 20여명이 나와 중감위회의실 북측 출입구 앞쪽에서 정 명예회장 일행을 맞았다. 송부위원장은 정 명예회장 일행에게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정선생이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며 악수를 건넸으며 이어 북한여성이 일행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
정명예회장 일행이 북한땅을 밟고 난 후 중감위 회의실안에서는 남북 적십자 연락관들이 재접촉을 갖고 방북단의 사진과 인적사항 등에 관한 서류를 교환하며 방북에필요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오전 6시10분께 서울 청운동 자택을 출발하기에 앞서 『고향으로 가게 돼 기쁘다. 어제 돼지꿈을 꾸었다』고 말해 고향방문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정 명예회장은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사에 도착한 뒤 평소와 같이 단골이발소에 들러 간단한 이발을 마친뒤 상오 6시40분께 정세영(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 정몽구(鄭夢九)·정몽헌(鄭夢憲) 그룹회장 등과 함께 임진각으로 향했다.
○…한편 소가 북한으로 떠난 이날 아침 충남 서산목장 주변에는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내려 화제가 됐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9시18분에서 32분까지 14분간 중부지역에서 유일하게 서산목장 인근에만 소나기가 내렸다고 밝혔다. 문승의(文勝義) 기상청장은 『서산지역에만 유일하게 비가 내린 것은 통일을 기원하는 하늘의 뜻이 서린 「우우(牛雨)」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했다.<판문점=공동취재단>판문점=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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