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 갖춘 시인지망생·동인활동에 문호 우선 개방/CD롬 1장에 담는 ‘전자북’ 형태로 출간『시집 100권을 한꺼번에 내겠다』
출판계가 IMF사태, 직접적으로는 종이값등 제작비 폭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판에 문학전문지인 월간 「현대시」가 10월에 무려 100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내겠다고 선언했다. 무슨 소리일까? 『출판사들은 상업성 없는 시집 출간은 기피하고 있습니다. 일부 출판사는 시의 작품성을 따지기보다는, 섹트적 성격을 고집하면서 좀처럼 문호를 개방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시」발행인 겸 주간인 원구식(元龜植·43) 시인은 「시집 100권 동시출간」이라는, 어쩌면 허황하게 들리는 구상의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그 방법은 전자 북(book)이다. CD롬 한 장에는 100권 아니라 500권의 시집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 CD롬에 통상적 시집과 마찬가지로 시인 한 사람에 50∼70편씩, 100명의 시집을 담고 이를 PC통신에 띄워 각 시집을 다운받아 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권당 1,000원에 판다는 구상이다. 참가시인들에게는 편집·교정비와 평론가 원고료로 30만원씩을 받는 대신 판매액의 30%를 인세로 지급한다. 시집 한 권을 자비출판할 경우 400만∼500만원이 드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 인쇄본 시집을 내기 원할 경우 실비로 내준다.
시집의 형태나 비용은 그만두고 「현대시」의 이 계획이 주목되는 것은 그 배경이다. 『출판사들은 몇몇 이름있는 시인들에게만 문을 열어주고, 정체불명의 잡지들은 시인지망생들에게 데뷔라는 미명 하에 잡지를 사게 하고 수백만∼수천만원의 돈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저명 문인과 대학교수까지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는 것이 원씨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무분별한 시집출판 상황 때문에 선량한 시인지망생들이 오도되고 자질이 의심스러운 시인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저명한 시인 K씨가 시집 출판기념회의 초청장을 받고 갔더니 아는 얼굴이 한 사람도 없더라거나, 웬만한 시독자들도 아는 중진시인 J씨에게 이런 모임의 참석자들이 『몇 년에 어디로 등단했느냐』고 되풀이 묻더라는 이야기는 사실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것.
「현대시」는 이런 배경에서 100권 시집 출간에는 기성 유명시인의 참여도 환영하지만 작품성을 갖춘 시인지망생, 동인지를 내려는 동인활동에 우선 문호를 개방할 작정이다. 이를 위해 김정란 오형엽씨등 「현대시」 편집위원을 포함한 20여명의 젊은 평론가와 시인이 작품을 거른다. 원씨는 『절판됐거나 잊혀진 시인들의 시집을 전자북형태로 출간하는 「현대시 라이브러리」 구축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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