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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새기는 ‘망치손’/덕수궁옆 목판조각가 조규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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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새기는 ‘망치손’/덕수궁옆 목판조각가 조규헌씨

입력
1998.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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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에 기술전수·노인 돌보기 등 한손은 없어도 마음은 ‘넉넉’덕수궁 대한문 옆에 세워진 손수레에서 목판에 귀감이 될 만한 글을 새기는 조규헌(曺圭賢·38)씨는 「사랑의 망치손」이다.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에 나타나 부지런히 목판에 글을 새기는 그의 오른팔에는 손대신 조그만 망치가 달려 있다. 행인들은 한 손엔 끌을 들고, 망치 달린 팔을 힘겹게 움직여가며 목판에 한자 글귀를 새기는 그를 먼저 본뒤 그가 새겨 돌담길에 길게 전시한 목판액자의 글들을 유심히 읽어본다.

초등학교 4학년때인 70년 군용트럭이 길가에서 놀던 조씨를 덮치면서 친구와 자신의 오른손을 잃었다. 충격에 학교를 그만두고 14년동안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기술과 글을 배워야 겠다」고 결심한 2년동안 독학을 한뒤 86년 고암(孤岩)이라는 호를 가진 스승의 내제자로 1년동안 서예와 서각을 배웠다. 스승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라는 가르침과 함께 「하늘아래 바위처럼 꿋꿋이 살라」며 호암(昊岩)이란 호를 내려주었다.

이후 낮에는 공사판에서 지게짐을 지고 밤에는 주워온 나무토막에다 글을 새기며 기량을 연마했다. 퉁퉁불은 오른팔의 부기가 빠질 날이 없는 각고의 수련을 한 조씨는 95년 덕수궁 돌담길로 나섰다. 비가 오는 날은 조씨에게 더없이 소중한 날이다. 강원 원주 소쩍새 마을 등 사회복지시설에 찾아가 고아들에게 서예와 서각을 가르친다. 또 일주일에 한번은 시립사회종합복지관의 목욕봉사차량을 타고 다니며 할아버지와 장애인들을 씻겨주는 일을 한다. 이번주부터는 어려운 나라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작품판매대금으로 받은 외화 전액을 서울시에 기탁키로 했다.

조씨의 꿈은 자신처럼 불우한 성장과정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이 스승에게서 배운 바를 가르치는 것이다.<손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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