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일이다. 신문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명색이 일간지 문화부기자인데 허구헌날 레스토랑을 사무실 삼아 사랑놀음에 하루해를 보내는 것이다. 당시 방송을 담당하던 몇몇 기자가 기자직을 왜곡한다며 분개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그 정도면 애교지. 세상에 밤낮없이 현장을 누비는 멋쟁이 사건기자만 있나?TV코미디 저질논쟁이 일때마다 연출가들이 하던 푸념이 생각났다. 『이 나라에는 거지와 깡패밖에 만만하게 다룰 직업이 없다』 알량한 변명이라 해도 집단의 이익이 문제되면 이성이고 논리고 다 팽개쳐 버리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 일리있는 주장이었다.
영화 「여고괴담」에 대한 교원단체의 반발을 보며 옛날 생각이 났다. 그들은 영화가 교권을 모독했다며 영화상영을 막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과잉반응이라는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또한번 우리 사회의 미성숙한 일면을 드러낸 것 같아 씁쓸하다.
영화는 억울하게 죽은 여고생이 귀신이 돼 못된 교사들을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공포영화의 형식을 빌었다고는 하나 학생이 교사를 살해하고 「미친 개」「늙은 여우」등으로 호칭한다니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충격적이다. 더욱이 주관객인 학생들이 『학교현실을 리얼하게 그렸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며 후련해한다는 것이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들로서는 참담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무참하게 매도된 선생님들만 참담한가. 교단의 신화가 무너져 상처받는 것은 선생님 뿐이 아니다. 그 영화를 보며 환호하는 학생들의 가슴 역시 황폐해졌을 것이다. 스승을 존경하고 신뢰하는 기쁨조차 빼앗긴 그들의 처지가 딱하다. 촌지고 폭력이고 일부의 문제라고 치자. 아직 교직을 성직으로 아는 교사가 더 많다고 하자. 스크린 앞에서 손뼉치며 흥분하는 학생들이 철없다고 치자. 그러나 학교를 「야만과 폭력의 정글」로 묘사하는 영화가 만들어져 학생들에게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면 선생님들도 교권 운운하며 흥분하기 전에 겸허한 마음으로 현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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