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프팅·번지점프·스카이다이빙… ‘극한레저’ 불황을 모른다/극도로 무서운 순간에 희열을 느끼는 악취미 소유자들/역경 이기려는 자신감의 표출인가 충격이 만성화된 사회의 슬픈이면인가충동, 자극, 불안, 공포, 안도, 희열… 죽을 것처럼 아찔한 스릴-. 여기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다. 스릴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극도로 무서운 순간에 재미와 희열을 느끼는 「악취미」의 소유자들. 살면서 모험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모험을 즐기기 위해 사는 듯한 강심장들.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극단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좇는 사람들. 목숨까지도 담보로 한 「극한 레저(Extreme Leisure)」를 일부러 찾아다니는 스릴마니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레저업계의 현안은 더 무섭고, 더 아찔한 놀이기구 들여오기. 레저인구가 크게 줄어든 요즘에도 유독 극한레저만은 성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롯데월드가 국내 최초로 선보인 자유낙하기구 「자이로 드롭(Gyro Drop)」은 하루 탑승객이 무려 5,600명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한마디로 롯데월드의 효자상품인 셈이다.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최근 도입한 거대 바이킹 「콜럼버스 대탐험」과 함께 가장 무시무시한 놀이기구로 손꼽히는 「허리케인」「독수리요새」가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3∼4년전부터 붐을 이루고 있는 번지점프, 래프팅(급류타기)도 스릴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종목들. 지금도 신규업체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스릴은 추락. 허리 또는 발목에 로프를 매고 약 40m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는 이미 대중 레저로 자리잡았다. 『셋, 둘, 하나, 번지!』구령에 맞춰 창공으로 몸을 던지면 끝없는 추락-, 잠시후 몸뚱이가 시계추처럼 4∼5차례 튕긴다. 진짜 스릴은 바로 이순간. 마치 무중력상태에서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다.
작년 3월 개장한 국내 최고높이(40m)의 청평 한국스포랜드 번지점프장에서는 지금까지 약 7,000여명이 뛰어내렸다. 매주말 이곳에 찾아와 뛰어내리는 상습 점프족도 상당수에 달한다. 『이들은 강아지를 안거나 우산을 들고 뒤돌아 뛰는 등 점프할 때마다 자세를 바꿔 새로운 스릴을 느끼려고 한다』는게 이곳 강사 최현채씨의 말이다. 제주도 중학교의 한 여교사(28)는 『번지점프를 하기위해 비행기, 버스, 택시를 번갈아 타고 청평까지 찾아왔다. 한번만 뛰고 돌아가기가 아쉬워 한꺼번에 5번을 뛰었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스릴광이라 할 수 있다.
한국레저협회 김창수사무국장은 『극한레저는 놀이나 체육이라기보다 인간의 욕구이자 본성의 발현』이라고 강조한다. 연세대 의대 고경봉교수(정신과)는 『보통자극에는 「면역」이 생겨 극단적인 자극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최근 IMF경제난으로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이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1만피트(3,000m가량) 상공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려 7,000피트를 수직 추락한뒤 낙하산을 펼치는 스카이다이빙도 극한레저의 대표 종목. 항공기에서 뛰어내리면 시속 250km이상으로 정신없이 떨어지는게 보통이다. 한국스카이다이빙협회 전영걸사무국장은 『낙하산이 펴지는 순간 죽음의 위기를 벗어났다는 묘한 쾌감이 드는게 스카이다이빙의 마력』이라며 『회원 600여명중 환갑이 다된 회원도 있다』고 말했다.
극한레저의 원조는 롤러 코스터(초고속궤도열차). 70여년전 미국에 처음 등장했을 때 나무궤도위에 철도식 레일을 깔아 달리던 롤러 코스터의 변천사는 과학기술만큼 눈부시다. 이 역시 요즘들어 갈수록 더 빠르고, 더 무섭게 변하고 있다.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에서는 아무것도 안보이는 칠흑의 공간속을 마구 누비는 우주선형이 대인기이다. 그런가 하면 용인 에버랜드의 「독수리요새」는 레일아래에 매달려 가는 서스펜디드 코스터. 고속의 스피드로 인해 좌우로 뒤죽박죽 움직일 뿐 아니라 급회전하면서 급상승·하강이 계속돼 몸이 공중으로 튕겨나갈 것 같은 공포를 준다. 외국의 스릴 사냥은 아이디어와 기술면에서 단연 앞서 있다. 미국 라스 베이거스의 「성층권 타워」에는 280m 높이에서 시속 160km로 질주하는 공중회전 열차 「슈퍼킥」이 있고, 탑 꼭대기에서 50m위 하늘로 솟았다가 다시 탑으로 떨어지는 우주대포도 있다. 독일 바덴지방의 유럽놀이공원에는 시속 180km로 치솟았다가 다시 총알처럼 내려오는 「기쁨의 열차」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릴은 이제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코드가 되었다. 스릴광에는 남녀노소도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극한 레저에 더 열광하고, 겁쟁이 남자들을 한껏 비웃기도 한다. 극한 레저를 통해 자신감과 의욕을 얻고, 억제된 욕구와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그러나 스릴 중독증은 사회에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문화를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씨는 『적당한 스릴은 권태로운 일상을 탈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친 자극은 개인의 파괴본능을 촉발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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