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엔 번호표 목엔 방울달고 검역과정 마쳐/실향민 귀향염원업고 내일아침 휴전선 통과14일 낮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의 서산농장. 70만평의 드넓은 초원 위에서 하루뒤면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500리 북행길」을 떠날 소 500마리가 따가운 햇볕 속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소들은 분단후 처음 휴전선을 넘기위한 준비를 이날 모두 마쳤다. 1번에서 500번까지 일련번호가 새겨진 표를 귀에 달았고 목에는 암수별로 황·녹색줄에 방울도 달았다. 농장 관계자는 『일소로 쓰려면 코뚜레도 필요하지만 정명예회장이 잔인하다고 반대해 애초에 코를 뚫지 않았다』며 『필요할 경우 북한측이 코뚜레를 해 일소로 부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농장 관계자들은 가벼운 흥분 속에서 판문점까지 싣고 갈 비상의약품과 운반트럭에 매달 플래카드, 적십자깃발을 챙기는 등 마지막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인근 마을주민들도 「장도」를 기원하는 고사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또 농장과 축사주변에는 경찰이 배치돼 분단사의 한 이정표가 될 이번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삼엄한 경비를 폈다.
북행길에 오를 소들은 이미 지난달 일주일 이상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돼 특별관리돼 왔다. 수의사들이 서산농장 시루섬 축사와 갈마리 축사에서 사육중인 3,000여마리 소 가운데 생후 7∼61개월된 건강한 암·수컷을 250마리씩 골라냈다. 선발된 소들은 다시 일주일에 걸쳐 항생제 주사를 맞는등 철저한 검역과정을 마쳤다.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이곳 서산농장에 소 사육이 시작된 것은 93년. 정명예회장의 지시로 150마리를 방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대규모 「목장」으로 커졌다. 이곳의 소들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자라 몸무게가 400∼450㎏으로 일반 비육우보다는 50∼100㎏정도 가볍다. 두달에 한번꼴로 농장을 방문, 직접 소를 돌봐온 정명예회장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소는 한뼘 농토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셨던 아버님께 바치고 싶은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라며 『축사를 둘러볼때면 늘 아버님이 함께 계신 것같은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그러나 정명예회장의 감회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에게 소는 고향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이번 첫 북행길에 오르는 소들은 모든 실향민들이 평생을 간직해온 귀향에의 꿈이자, 국민들의 간절한 통일염원의 상징이다.
소떼는 15일 밤11시 서산농장을 출발한다. 전북 전주의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개조된 트럭 50여대에 나눠 실려 갈 소들은 장시간의 「차량여행」동안 진정제 주사를 맞게된다.
임진각 도착시간은 16일 새벽 6시. 이곳에서 2시간동안 머물다 서울에서 출발한 정명예회장 일행을 뒤따라 오전8시 극적으로 휴전선을 넘는다.<서산=이상연 기자>서산=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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