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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 멕시코전을 보고/이순원 소설가(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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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 멕시코전을 보고/이순원 소설가(특별기고)

입력
1998.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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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건 아니잖는가정말 이건 아니잖는가.

게임이 끝나자 내 입에서 저절로 그런 신음이 터져나왔다. 거듭 말하지만 정말 이건 아니잖는가.

물론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우리 선수들이 잘 싸웠다는 것도 안다. 아니, 두 눈으로 우리 모두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문제는 바로 후반전이었던 것인데, 그 후반전 45분 동안 비록 상대에게 끌려다니며 숱한 위기 속에 졸전으로 경기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전반에 선취 득점한 한 골을 끝까지 잘 지켰다면 이 관전기 역시 「대한의 남아」의 기개와 투지를 외치며 월드컵 본선 4회 진출 만에 이룬 첫 승리에 감격하는 글로 이 지면을 채웠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첫 승에 목마른 사람처럼 그 1승을 기다려왔다. 그동안 눈만 뜨면 모든 방송과 모든 신문이 그렇게 표현하듯 「멕시코를 제물로 삼아」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본선 1승을 이 게임에서 이룰 것을 기대하고 염원하지 않았던가.

IMF 상황 하에 무엇 하나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없는 이 시기에 오직 월드컵 본선 1승만이 우리의 막힌 가슴을 풀어줄 것이며, 또 그 염원이이번엔 꼭 풀리게 될 거라고 우리 모두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믿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멕시코를 제물로 삼아」 1승을 올리기는 커녕 후반전 45분 내내 형편 없는 졸전 속에 「멕시코의 제물이 되어」오히려 그 1승을 헌납했다.

이 경기의 전략과 전술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는 전문가들이 따로 그 부분에 대해 진단하고 해석하겠지만,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어도 밤잠을 설치고 어제의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마디 했을 것이다. 정말 이건 아니잖느냐고. 이러자고 우리 모두 이날을 기다리고, 또 밤잠을 설치고 했던 것은 아니잖느냐고.

하석주의 선취 득점은 정말 훌륭했다. 그러나 훌륭했던 건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곧이어 미드필드에서 어이없는 후방 태클이 나왔다. 그것이 퇴장까지 감수하며 몸을 날렸어야 할 만큼 위기 상황에서의 태클이었던가. 그랬다면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대 1이 아니라 4 대 1로 패한다 하더라도 그 후방 태클이 결정적인 골 찬스 하나를 차단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것이 아니었잖은가.

어쩌면 그것은 위기 상황에서의 태클이 아니라 자기 발로 이룬 선취 득점에 들뜬 나머지 자기 감정 조절의 실패에서 나온 뒤늦은 골 세레모니와 같은 흥분 속의 태클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취 득점 이후 그 흥분으로 곧바로 또 한 번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지나친 욕심이 결국 게임 전체를 힘들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내 눈에 그것은 IMF 상황을 맞기 전 거품 속에 샴페인부터 먼저 터뜨리던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데가 있었다. 우리는 침착하지 못했다.

그가 퇴장을 당할 때 너무도 소중한 한 골을 넣은 선수이기에 우리가 미처 그의 쓸데없는 태클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던 것이지 이후 게임은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뒤바뀌고 말았다.

거기다가 동양의 「붉은 악마」다운 투지라도 끝까지 보여주었더라면 그래도 그 패배가 이렇게까지 허탈하지 않을 것이다. 힘과 기술에서뿐 아니라 왠지 감독의 전략과 전술에서도, 선수들의 감정 콘트롤에서도, 그리고 투지에서까지 우리는 밀리고 말았다.

세계의 벽이 높다는 건 안다. 그러나 이렇게 허물어진 것은 그 벽 때문만은 아니잖은가.

밤잠을 잊고 방 안에서도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경기에선 대한 남아의 투지를 보여다오. 이제 우리는 1승만큼이나 그것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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