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학회서 강연/“죽느냐 사느냐…” 그열정 그대로/“요즘 연극 신비감없어요” 지적도김동원(예술원회원·82)씨는 여전히 배우였다. 94년 「이성계의 부동산」으로 무대를 떠난 지 4년3개월. 그가 다시 「햄릿」으로 돌아온 것은 13일 한국셰익스피어학회(회장 신정옥)가 「햄릿을 주로 한 나의 연기체험」을 주제로 마련한 특별강연회에서였다. 신정옥회장이 『김동원선생의 증언은 우리가 소중히 보존해야 할 한국연극사의 일부』라며 준비한 자리였다.
나이먹은 햄릿이 이런 모습일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하는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 오필리어에게 『수도원으로 가라』며 「약한 자, 여자」를 질책하는 노배우의 연기에는 품위와 정열이 살아 있었다. 『내 것이 아니면 안된다』며 손에 쥔 것은 낡은 「햄릿」대본. 『분장과 의상 없이 벌거벗은 느낌』이라며 조심스레 시작한 그는 이내 땀이 맺히고 호흡이 가빴다. 그래도 김씨는 『좋은 대사가 많은데…』라며 대본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햄릿을 다시 하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기억력에 한계를 느낍니다. 그렇다고 단역만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않고. 배우에겐 등장만큼 퇴장이 중요합니다』 51년 피란지 대구서 초연한 「햄릿」(극단 신협)은 김동원씨에게 「한국의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별명을 안겨주었고 모두 4번의 햄릿을 연기했다. 당시 연습기간이 일주일밖에 없었던 김씨는 친구인 연출자 이해랑씨에게 『못하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3일만에 대사를 외웠다.
전쟁통으로 모두 어려웠지만 연극을 향한 마음은 뜨거웠다. 온갖 종류의 깡통을 잘라 왕관 목걸이등 못만든 소품이 없었고 남자타이즈는 궁리끝에 미군내의를 검정 빨강 파랑색으로 물들여 썼다. 그래도 극장은 밀려드는 관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연극은 국민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볼거리였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그의 경험담 앞에서 현재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연극계의 어려움은 엄살로만 보였다.
『요즘 연극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역시 연극은 숨기는 것, 환상이 있어야 하거든요. 실험도 좋지만 다 드러내놓고 신비감을 없애서야 누가 TV나 영화를 보지 연극을 보겠어요』 노배우의 연극계를 향한 조언은 따끔했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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