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齡아버지·질병 남동생에 40代딸 “내집 비워달라” 소송/大法, 원고승소 원심판결파기고령과 지병으로 생활능력이 없는 노부모에게 집을 빌려준 뒤 비워주지 않자 딸이 부모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법원이 인륜(人倫)을 저버린 행위라며 패소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김형선·金炯善대법관)는 12일 딸 김모(46)씨가 아버지(82)와 남동생(42)등 2명을 상대로 낸 건물명도소송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승소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둘째 딸인 김씨는 91년 연립주택(20여평)을 구입한 뒤 호주로 이민을 가면서 노부모에게 3년간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당시 간염 등 지병을 앓던 남동생은 마땅한 거처가 없자 이 곳에서 부모를 모시며 함께 생활했다. 남동생은 생활비를 벌어올 형편이 안되자 다른 형제들의 도움과 아내가 벌어오는 돈을 아껴가며 부모를 부양했다.
하지만 김씨는 3년 계약기간이 끝나자 아버지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고 아버지는 『2년만 더 살 수 있도록 해달라』며 애원해 94년6월 겨우 월세 25만원에 2년간 거주한다는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딸은 이때 월세를 2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주택을 넘겨받는다는 조건까지 붙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고령인데다 고혈압 당뇨등 질병으로 생활능력이 없어 월세를 못내자 95년5월 남편을 시켜 주택을 두달내에 넘긴다는 각서까지 받은 뒤 아버지와 남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피고는 딸의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이 이미 종료된만큼 점유권이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원고는 아버지가 고령과 지병으로 인해 생활능력이 없는 만큼 아버지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데다 주거에 관해 별다른 조치없이 주택의 소유권자임을 내세워 마땅한 거처도 없는 아버지에게 주택에서 나가라고 요구한 것은 부녀(父女)간의 인륜을 파괴하는 행위로 권리남용에 해당된다』며 원심을 깨고 아버지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또 『남동생은 스스로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연로한 부모를 모시고 부양 의무를 다하고 있고 부모의 입장에서도 남동생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만큼 마땅한 거처가 없는 남동생 가족에 대해서도 주택명도를 청구하는 행위는 인륜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산권의 행사도 친족간의 인륜에 반할 수는 없다』며 『이번 판결은 물질주의적 사고가 판치는 이 시대에 경종을 울려준 판결』이라고 말했다.<박정철 기자>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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