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먼저 젖는 절절한 우리네 정서8일은 고(故) 박재삼(朴在森·1933∼1997)시인의 1주기였다.
「해방 이후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20세기 한국의 마지막 서정시인」으로 불리던 고인은 평소 문우들에게 『병과 같이 가기로 작정했더니 한결 나아진 것같아』라고 말해왔던 것처럼, 30여년을 따라다니던 병마를 자신의 한(恨)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의 1주기를 맞아 「박재삼 시전집」(민음사 발행) 첫번째 권이 나왔다. 첫 시집 「춘향이 마음」(62년)부터 다섯번째 시집 「뜨거운 달」(79년)까지 5권에 실린 시들 전부를 수록한 것이다. 생전에 15권의 시집을 냈던 그의 시전집은 모두 3권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전집의 어느 쪽을 들쳐 어느 한 편을 읽더라도 그의 시는 구구한 해설이나, 특별한 지식 또는 이념을 동원할 것 없이 곧바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이 바로 박재삼시의 힘이다. 그것은 그의 시어가 한국인만의 정서를 누구보다 쉽고도 절절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단단한 정조」를 잃지 않은 품격 있는 시어, 시가 그 이하일 때는 하찮은 넋두리로 떨어지고 그 이상을 욕심낼 때는 현학이나 말장난에 그치고 만다면 고인은 분명 그 경계를 지키며 우리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은 사람이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저것 봐, 저것봐,/네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울음이 타는 가을강」전문). 마음자리가 편치 않은 이즈음 박시인의 절창은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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