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야기한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쓰레기」를 과연 얼마나 청소할 수 있을까. 또 재도약을 위한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가경영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켜 나갈 수 있을까.상이한 경제체제를 비교분석하는 비교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쓰레기 청소」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과제인지 새삼 알 수 있다.
비교경제학분야의 세계적 석학 맨서 올슨 전 미국매릴랜드대 교수(지난 2월 타계)는 2차대전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50년대중반 유럽을 여행하면서 학문연구의 중요한 단초를 발견했다. 승전국 영국과 패전국 독일의 경제적 명암이다. 전쟁전 영국과 독일의 경제적 기반은 비슷했다. 그러나 전쟁후의 상황은 180도 달랐다. 영국은 전쟁에서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전쟁전보다 별로 나아진게 없었다. 오히려 기울어가는 느낌이 역력했다. 반면 독일은 잿더미속에서 재도약에 성공, 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
영국과 독일의 위상을 이처럼 다르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올슨교수는 이 화두(話頭)를 푸느라 평생동안 고민했다. 올슨교수의 결론은 한가지다. 낡은 제도와 관행, 여기에 기생해온 기득권층 등 「쓰레기」를 제대로 청소했느냐 하지 못했느냐가 전쟁후의 경제적 명암을 갈랐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전쟁과 함께 사람(기득권층)과 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올슨교수는 이를 「쓰레기 청소」로 표현했다. 독일의 새 지도자들은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가경영시스템을 다시 설계했다. 영국은 달랐다. 개혁되어야 했을 기득권층이 전쟁영웅으로 군림했다. 「쓰레기 청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득권 보호를 위한 파당주의가 극에 달했다. 낡은 관행과 제도도 그대로 유지됐다. 영국은 결국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영화를 뒤로 한 채 70년대중반 IMF의 신탁통치를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올슨교수의 연구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첫째는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쓰레기 청소」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시대변화에 맞는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가경영시스템의 설계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하나도 충족되지 않으면 IMF체제조기극복과 경제 재도약은 불가능하다. 수순은 「쓰레기 청소」가 먼저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실대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의 정리(구조조정)는 본격적인 「쓰레기 청소」의 시작이다. 은행의 인수합병(M&A)도 같은 맥락이다. 「쓰레기 청소」의 D데이는 오는 20일이다. 정부는 20일 부실대기업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3개월동안 광범위한 부실정리에 나설 방침이다. 환부를 도려내는 대수술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부실정리는 마치 서울도심 빌딩숲속에서 부실빌딩을 골라내 안전사고 없이 제거하는 작업과 같다.
선택적인 「쓰레기 청소」는 치밀한 사전준비를 거쳐 신속·과감하게 이루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집도의(執刀醫)가 충분한 준비없이 겁을 집어 먹고 수술을 질질 끌면 수술결과는 보나마나다. 환자가 인내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때문에 부실정리에도 「최첨단 폭파공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서울 남산의 외인아파트를 눈깜짝할 사이에 폭파시켜버렸듯이 부실대기업과 부실금융기관도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래식 공법에 의한 폭파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큰데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한국경제의 개혁은 20일부터 시작될 「쓰레기 청소」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레기가 청소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새로운 일(개혁)도 할 수 없다. 집도의인 정부당국자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작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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