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로 82년 274엔/95년 79엔 ‘엔高 절정’/이후 거품빠지며 내리막일본의 엔화는 49년부터 71년까지 달러당 360엔에 고정됐다. 이는 48년 출범한 국제통화기금(IMF)이 고정환율체제에 따라 정해준 환율이었다.
■변동환율제 이행 60년대말부터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늘어나자 미국 등 선진국은 엔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71년 12월 선진 10개국 재무장관간의 스미소니언 합의에 따라 엔화는 전후 처음으로 평가절상(16.88%)돼 달러당 306엔까지 올랐다.
일본정부는 계속되는 엔화의 평가절상 압력으로 73년 2월 엔화 환율을 달러당 273.10엔으로 2차 평가절상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했다. 73년 1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서 74년 8월에는 다시 300엔선 밑으로 떨어졌다.
■엔고 시대 70년대 중반이후 미국경제가 경기침체 속의 물가상승이라는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 달러 약세, 엔화 강세는 뚜렷해졌다. 78년 7월 200엔선을 돌파했고 이해 10월 31일에는 175.50엔까지 올랐다. 엔화 강세는 78년 12월 2차 오일쇼크로 기세가 꺾였고 계속되는 달러 약세를 막기위해 지미 카터 미대통령이 80년 4월 달러화 방위조치를 내놓자 82년 10월에는 274.70엔까지 떨어졌다.
엔저로 인해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가 과도하게 늘어나자 G5 재무장관은 85년 9월 엔고에 합의했다(플라자 합의). 이에 따라 엔화는 다시 강세를 지속해 87년 1월 150엔선을 돌파했고 88년 11월에는 121.15엔까지 올랐다. 80년대말 미국 경제는 회복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89년 리크루트 스캔들이 정치문제로 비화했고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91년 미국의 이라크 공습으로 걸프전이 발발할 때까지 엔화와 달러화는 130∼150엔선에서 공방전을 펼쳤다.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후 미국의 대일 무역역조 시정과 무역장벽 철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엔화는 다시 강세를 나타내 94년 6월 100엔선을 돌파했고 미일간 자동차 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95년 4월19일 엔화는 79.75엔까지 치솟았다.
■엔저 시대 그러나 이때는 이미 미국경제가 전후 최고의 호황국면으로 접어든 직후였다. 일본은 거품 경제의 붕괴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기 시작, 곧이어 달러화 강세와 엔화 약세현상이 이어졌다. 95년 12월 100엔밑으로 떨어진 엔화는 97년 12월 130엔, 98년 4월 135엔이 붕괴되면서 71년 「1달러=360엔시대」를 마감한 후 가장 긴 「엔저 시대」로 접어들었다.<박정태 기자>박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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