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2년 반 앞으로 다가왔다. 20세기의 엄청난 성취와 해악을 돌아보면서 새 밀레니엄(1,00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이번 세기말은 19세기말과 달리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다. 정보화시대의 경적이 요란하고 미국은 다시 유일 초강대국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가능성은 많다. 21세기 인류의 모습과 과제를 짚어본다.칸트는 퇴계만큼 가깝고 퇴계는 칸트보다 멉니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우리의 사상적 현재를 계명대 철학과 이진우(43)교수는 이렇게 진단한다. 칸트의 후예들이 근대 합리주의의 극한까지 치닫고 다시 그 후예들이 근대의 해체를 부르짖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들고 나온 지도 한참 지난 지금 이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21세기 새 밀레니엄(1,000년)의 준비는 경제발전과 정보화만으로는 안된다. 사상과 문화 없는 발전이 얼마나 맥없던가.
다시 어떻게 할 것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아니 서양문명 전체의 기초와 본성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비판하고 해채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 문화와 전통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해석해야 할 때입니다. 단순한 회상이나 기억이 아니고 사상적 논리적으로 재구성해 정체성을 찾는 작업입니다. 17세기 과학발전 이후 전지구적 범위로 확산된 서양 근대문명은 이제 환경파괴, 인간복제 등 패러다임으로서의 한계에 와 있습니다. 우리의 작업은 잘만 하면 동·서양의 새로운 화해, 새 문화패러다임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 철학과 김상환(38)교수의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우리것과 전통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연세대 정외과 함재봉(40)교수는 그것을 「유교」로 규정한다. 「다 떨어진 봉건사상」에서 뭘 찾자는 것일까? 개입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의 극단까지 치달은 근대의 병폐를 유교의 가족조의,예절,선비정신같은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세계적 보편성 획득을 염두에 두는 작업이니까요.
다시 현재의 좌표로 돌아와 보자. 서강대 사회학과 김영한(55·서양사상사)교수의 진단. 「사상을 포함해서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은 지그재그형입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립이 그렇지요.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은 비판이지 대안이 아닙니다. 따라서 21세기는 둘 사이에 평형을 잡을 수 있는 쪽으로 나갈 것으로 봅니다.
특히 「우리」의 현재는? 근대의 긍정적 측면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좌우이데올로기를 들고 싸우다가 60년대에 본격화한 틀근대 논의를 80년대 들어 「무분별」에 가까울 만큼 수입하기 급급했던것 아닌가?
또 한가지.지성계에서 21세기에 중시해야 할 흐름으로 「환경」을 꼽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이진우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20세기 환경운동은 기술과학문명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기에는 자연과 환경의 고유가치를 인정하는 생태학적 사유를 모든 측면에서 보편화하느 쪽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현대와 전통,서양과 동양에 녹색대안까지 아우르는 지적 과제… 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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