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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배달” 재기의 새벽/실직후 본보배달 박철규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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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배달” 재기의 새벽/실직후 본보배달 박철규씨 부부

입력
199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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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나간줄 알았던 아내따라 뒤늦게 합류/“양로원 돕기 등 이젠 나눔의 삶” 굳은 약속도8일 어둠이 채 사라지지 않은 신새벽의 서울 강동구 성내동 골목. 박철규(朴哲圭·37·서울 강동구 성내3동)씨 부부는 이날도 어김없이 함께 집을 나서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박씨 부부의 가슴에는 이제 막 윤전기에서 나와 잉크냄새 채 가시지않은 한국일보가 한뭉치씩 안겨있다. 이들에게 한국일보는 단순한 신문이 아니라 두 사람이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미래이다.

원래 박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H건설 출신의 베테랑 건축기술자. 지난해초 한 선배의 권유로 「규모는 작아도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내실있어 보이는 중소건설회사로 옮겼으나 이 회사가 IMF사태이후 운영이 어려워지자 올해초 스스로 걸어나왔다.

한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녔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좌절하던 박씨는 뜻밖의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벽마다 운동하러 나간다던 부인 이옥녀(李玉女·32)씨가 사실은 남몰래 신문배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집에서 놀아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는 아내였습니다. 정말 고마웠죠. 다음날부터 아무말 하지 않고 아내를 따라 나섰습니다』

남들 곤히 잠든 새벽 3시에 일어나 꼬박 3시간 동안 신문 500부를 돌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한동안 집에서 놀면서 무너졌던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신문을 돌리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인생, 하나 뿐인 아들 지황(地皇·8)이와 아내,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

부인도 남편이 신문배달을 시작한 후 『마음을 다잡았다』며 고마워 했다. 한때는 신문배달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열심히 살면 얼마든지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박씨 부부는 최근 둘만의 다짐을 했다. 부부가 함께 2∼3년간 열심히 일해 작은 분식점을 낸다는 계획을 세우는 한편, 매달 거르지 않고 경기 광주군 곤지암의 양로원 「안나의 집」을 찾아 돕기로 했다. 벌써 여러차례 「안나의 집」을 찾아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고 청소와 잡초뽑기도 하며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

『IMF가 정말로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앗아가버린 것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모두 자기만 알고 남을 위한 배려는 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스스로 「버릴 줄 아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박씨는 요즘 자주 책상 앞에 앉는다. 20여년간 마음 속으로만 품어온 「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 원고지를 펼쳐놓고 펜을 잡는다.

「…사랑이 깨어지기 쉬운 동그라미라면/ 세상도 깨어지기 쉬운 동그라미랍니다/ 모든 동그라미란 연약하고 아름다운 것…」 자작시에 쓴 「동그라미」는 바로 박씨 부부가 조심스럽게 가꾸어가는 「희망」이다.<박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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