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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들의 붕괴/金鎭炫 서울시립대 총장(火曜世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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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들의 붕괴/金鎭炫 서울시립대 총장(火曜世評)

입력
199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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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진리에의 충실함이 부족하고 진실에의 외경이 없음에 과연 국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 6·4지방선거는 역대선거에서 최저의 투표율을 보였다. 대도시에서는 40%대의 투표율을 보였고 지역분할 지역감정은 더 골이 깊어졌다. 투표율 낮아지는 것이 선진국의 현상이니 이제 선진국보다 더 낮아진 투표율로 해서 이미 선진국을 졸업했다 할 것인가. 선진국의 저투표율은 평화와 복지와 국가 기본이 튼튼한데서 오는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다. 6·25 이후 최대 국난, 즉 전쟁을 치르는 만큼의 비상한 나라형편에서 국민들이 저투표율의 정치 무관심을 보였다면 그것은 정치적 냉소, 정치에의 적대감을 표시한 것이다. 비상한 국난에서의 정치적 무관심 냉소 적대감은 이론적으로 보면 비상한 변화, 변화의 비정상성을 의미한다.이 나라 지도자들의 총체적 행태가 국민들에 보여준 결과는 도덕적 허무주의일 뿐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정당성 정체성 정통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정당성 정체성 정통성에 대한 허무주의를 키워가는 과정이다. 박정희의 신화도 깨졌다. 기아(起亞)의 신화도 깨졌다. 재벌의 신화도 깨졌다. 한강의 기적과 관료의 신화도, 환란(換亂) 책임논의의 한심한 타락상에서 깨졌다. 「문민」정부와 정치9단의 신화도 깨졌다. 정보부로 대표되는 반공(反共)의 신화도, 문익환으로 대표되는 통일지상주의 신화도 깨졌다. 전태일의 신화는 과격 귀족노동조합으로 하여 깨졌다. 헌신의 대명사여야 할 대통령직의 신화도 철저히 깨졌다. 대학 언론 법조 병원의 신뢰와 신화도 무참히 깨졌다. 민주투사의 신화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유신(維新)적자나 광주를 짓밟아 「역도」라 불렸던 이들과도 손잡기를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깨져가고 있다. 건국이후 최초의 정권교체라는데, 새정부와 여권에는 세배때면 박정희 묘소에서부터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대통령의 집을 모두 절하고 다녀야 할 인사들이 자꾸 늘고 있다. 각 정권의 정당성 정체성 정통성을 분별할 지성적 능력이 모자란 사람들이거나 각 정권마다 아첨하고 속일 수 있는 재주와 꾀 많은 도덕적 부패자들일 것이다. 아마도 이 재주와 꾀로 김일성이나 김정일 밑에서까지도 출세할 수 있을 것이다.

신화의 파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파괴에서 진정한 정당성 도덕성의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대중주의적 붕당적 보복적 파괴일 뿐이다. 「용의 눈물」의 인기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권력」을 잡고 지키는 스토리의 오락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삼국지(三國志) 전문가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고 권고한다. 권력을 잡기 위하여 거짓과 눈속임과 뒤통수 치기와 사람잡기의 명수들이 펼치는 오락물이지 한 줌의 진리도 인간성도 도덕성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에서는 선진국도 되기 전에 선진국의 경향보다 더 빨리 오락사회화가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도 예술도 언론도 종교도 학문도 정치도 오락화해 가고 있다. 이 오락화의 진정한 동인은 상업화, 즉 돈이다. 여기에다 한국 특유의 권력화, 즉 학자도 종교인도 법조인도 관료도 전문기술자도 예술인도 다소의 인기만 얻으면 바로 정치권력을 탐하는 특성까지 겹쳐 이 땅의 오락화 상업화 권력화가 범람하고 있다. 진리의 추구, 진실에의 탐구를 멀리하고 그리하여 도덕적 허무주의가 흐르는데 어찌 국난을 극복하고 좋은 나라를 꿈꿀 것인가. 진리와 진실에의 열정이 사그라질 때, 진리에의 구도(求道)와 진실에의 두려움이 사라질 때, 사람도 공동체도 생명을 잃는다. 백성들이 정말 어찌 사는 것이 옳게 살고 착하게 사는 것인지 지도자들에게서 전범을 찾지 못할 때 사회통합은 없고 사회붕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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