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기·감시카메라 세계서 알아주는 기업/“은행돈 안쓰고 틈새시장 공략”71년초 서울 청계천에 4평크기의 조그만 공장을 차리고 도난방지기를 만들고 있던 정일모(鄭一謨·66) 국제전자사장에게 해군 통신감이 찾아왔다. 『선배님, 무전기 문제로 해안방위에 구멍이 뚫리고 있습니다. 무전기를 국산으로 개발해주십시오』
정사장은 정색을 하고 되받았다. 『군 출신인 나더러 군납업자를 하라는 겁니까. 나는 못합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사관학교 교관으로 몸담았던 정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편입하면서 「전자 사업을 해보자」는 뜻을 굳힌다. 68년 예편한 정사장은 청계천에 TV수리점을 차리고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의욕만 있었지 사회물정을 모르는 탓에 정사장은 밑지는 장사를 수없이 했다. 종종 사기까지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난방지기를 개발해 고 이병철(李秉喆) 삼성그룹회장등 부유층 주택에 설치해주면서 사업에 재미가 붙을 즈음 해군 통신감이 찾아온 것이었다.
해군 통신감은 정사장을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미국제 중고 부품들을 구해다가 무전기를 만든 탓에 성능이 서로 달라 통신이 잘 안된다는 것이 해군 통신감의 하소연이었다.
이 때부터 정사장은 무전기와 함께 하는 인생이 됐다. 우선 일본에서 핵심 부품을 들여다가 무전기를 만들면서 꾸준히 국산개발을 추진해갔다. 5년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76년 최초의 국산 무전기가 정사장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국제전자의 무전기는 해군과 경찰은 물론 민수용으로도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국제전자는 무전기에 이어 산업용 감시카메라를 개발해 이 분야에서 세계 10위 이내의 기업으로 올라섰다. 국제전자는 종업원 367명에 지난해 57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이중 40%이상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다.
국제전자의 무전기시스템기술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91년 리비아정부의 요청으로 무전기시스템 제조설비를 플랜트수출하고 지금까지 관리해주고 있다. 현재 동유럽 한 국가의 경찰청으로부터 한국 경찰과 똑같은 통신시스템을 턴키(Turn Key)방식으로 납품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을 정도다.
은행돈을 거의 쓰지 않는 이 회사는 지난해말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터진 직후 40억원을 들여 경기 군포시에 제2공장을 매입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통신기기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온 터라 IMF체제에서도 매출액과 수익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93년 장외시장에 등록한데 이어 올해 8월 기업공개를 목표하고 있다.
정사장은 『재벌들이 하지 않는 틈새시장의 산업용 제품에 주력하다 보니 사업을 해오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면서 기술력을 갖춘 전문기업이 많아야 나라경제가 튼튼해진다고 말했다.<최원룡 기자>최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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