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인정이 넘쳤던…/50년전 과거가 불러주는 희망가/광복직후 서민애환 촌스런듯 풋풋하게 담아 그때 그 연극 재현/임영웅연출 12∼21일 국립극장1998년의 연극 중 50년 뒤 다시 공연될 작품은 몇이나 될까. 또 2048년의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까. 국립극단이 공연하는 48년작 「혈맥」은 창고에서 찾아낸 보물같은 작품이다. 나라는 독립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민의 고단한 풍경과 어려울 때 돕는 따뜻한 인정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48년 중앙극장 전속극단 신청년의 김영수씨가 쓰고 박진씨가 연출, 당시 문교부 주최 제1회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작품상등을 받았다. 묻혀 있는 우리 희곡을 재조명하기 위한 「한국연극의 재발견」 시리즈 첫 순서로 12∼21일 국립극장 소극장에 올려진다.
47년, 풍로 항아리 독 빨랫감이 널려 있는 서울 성북동 산비탈 방공호. 깡통을 자르고 펴서 대야 두레박 남포등을 만드는 깡통영감(김재건), 일본서 대학을 다닌 동생 원칠(전국환)과 목판담배장수 형 원팔(최상설)의 갈등, 스물아홉 색시(조은경)를 데려왔다가 돈만 털린 털보영감(정상철)의 넋두리가 끊이질 않는 삶의 터전이다.
『원체 기계가 (머리를) 좀 뜯어요』라며 서투른 솜씨로 바리캉을 다루는 거리의 이발사(이상직), 죽기 전 「빠이나뿌루(파인애플)」 한 번 먹고 싶다는 원팔의 아내(이혜경), 헬로껄(양공주), 야미장수, 염장이등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반세기전 광복직후 우리의 삶을 실감케 한다.
『이담에 죽으면 별이 될테야』라는 러브신은 또 얼마나 고색창연한지. 아옹다옹하던 이들이 원칠아내의 죽음으로 화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풋풋한 정까지 서민극의 모든 요소가 포함돼 있다.
임영웅(64)씨는 87년 「침묵의 바다」이후 12년만에 국립극단에 돌아와 사실주의 연출의 진수를 보여줄 각오를 하고 있다. 72년 임씨가 국립극단 부설 연기인양성소 소장으로 교육시킨 5기생 중 정상철단장 최상설 김재건 서희승씨는 이제 국립극단의 든든한 주역으로 성장했다. 「임틀러」라며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과거는 술자리의 추억이 됐고 『내일도 원전대로 안하면(대사 틀리면) 심통을 부리겠다』는 임씨의 엄포도 유머스럽기만 하다.
임씨는 신문기자시절 원작을 쓴 김영수씨와 교분을 쌓았다. 방송사PD, 연극연출자를 넘나든 공통점이 친교의 매개가 됐다. 김영수(1911∼79)씨는 후에 방송작가로 전환, 「박서방」 「새엄마」 「떡국」 「새댁」등의 작품을 남겼다. 임씨는 『가난에 찌들었지만 인생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결말은 IMF체제로 어려움에 처한 오늘의 관객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02)2741151∼8<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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