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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읽기/임철순 문화과학부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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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읽기/임철순 문화과학부장(메아리)

입력
1998.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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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밤 KBS 1TV는 자연다큐멘터리 「북한강」을 1시간동안 방영했다. 금강산 만폭동에서 발원해 남한강과 합류하는 양수리에 이르기까지 371㎞의 국토를 적시며 굽이굽이 흐르는 북한강의 자연과 생태는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그 중에서도 얼룩동사리라는 생소한 물고기는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바위 위에 엎드려 있으면 돌인지 물고기인지 구분이 안되는 얼룩동사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잽싸게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사는 육식동물이다.얼룩동사리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 세살모사의 공격을 당하자 서로 아가리를 문 상태로 2시간여동안 싸우다가 함께 죽을 만큼 얼룩동사리는 강했다. 그 수컷의 부성애는 지극했다. 암컷 3마리를 상대해 5,000여개의 알을 산란·수정한 뒤 산소를 공급해 새끼를 부화시키려고 수컷은 지느러미로 끊임없이 부채질을 했다. 알을 지키기 위해 덩치가 훨씬 큰 물고기를 퇴치하면서 20여일간 굶은 상태로 부채질을 하던 수컷은 새끼들이 모두 알에서 나오자 헐떡거리다가 죽는다. 이상한 운명이다.

자연다큐멘터리는 재미있고 아름답다. 자연다큐멘터리에는 동물의 죽음과 식물의 사멸,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자연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는 중심주제는 죽음이다. 그런데 왜 그 죽음이 아름다운가. 인간이 개입하거나 조작하지 못하는 엄정하고 차질없는 생명순환과정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으면 탄생도 없는 우주질서를 자연다큐멘터리는 선명한 영상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얼룩동사리도 그렇게 죽도록 운명지워진 동물이었던 것이다.

90년대들어 EBS를 비롯한 방송사에 자연다큐멘터리 제작붐이 일어 고래 파충류 거미 게 호랑이 갯벌등 많은 자연다큐멘터리가 발표됐다. 초기에는 주로 명절연휴때 방영되더니 이제는 수시로 안방에 찾아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고향이다. 그래서 자연다큐멘터리는 친화성이 높다. 자연다큐멘터리의 주제가 죽음이라면 그 제작의 기본자세와 덕목은 기다림일 것이다. 「북한강」의 경우에도 몇 초의 화면을 위해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지만 거짓말하지 않는 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제작진은 참을성있게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79세의 원로시인 구상(具常)씨는 담담하고도 참을성있게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같다. 그가 최근 발간한 시집 「인류의 맹점에서」는 임종고백처럼 쓴 시들을 모은 것이다. 한 평론가가 「우리들 마음의 빨래터」라고 평한 이 시집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질서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진솔하고 담담한 언어 때문이리라. 구씨는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시에서 5년간 살았던 하와이 호놀룰루시의 한 동물원을 소개하고 있다. 철책과 철망 속에 여러 짐승과 새가 있는데, 맨 마지막 우리에는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아무 동물도 없이 대문짝만한 거울이 있다.「가장 사나운 짐승」은 바로 인간이다. 구씨는 날마다 얼굴과 마음을 거울에 비춰 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 볼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6·4지방선거라는 정치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람들은 갖가지 경쟁양상과 많은 정치인들의 부침을 볼 수 있었다. 선거경쟁에서 후보들은 짐승처럼 싸웠다. 아니 사실은 짐승처럼 싸우지 않았다. 자연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짐승들은 음모와 속임수·야합이 없는, 냉혹하지만 정직한 경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정치다큐멘터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인간다큐멘터리에는 허위와 가식이 끼여들게 마련이지만 그들은 얼룩동사리처럼, 또는 자연다큐멘터리의 제작진처럼 참을성있게 기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장 사나운 짐승임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국민을 실망시키고 투표율을 이토록 저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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