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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냐 의리냐/김동길(東窓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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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냐 의리냐/김동길(東窓을 열고)

입력
1998.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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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감투에 대한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입신출세가 가문을 영화롭게 하는 길임을 누가 부인하랴. 영국총리를 지낸 대처의 아버지는 잡화상의 주인이었다고 하고,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李光耀)의 부친은 이름없는 시계수리공이었다고 들었다. 미천한 곳에서 몸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크게 명성을 떨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함흥사람 이성계는 왕의 뜻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새로운 왕조 하나를 일으킬 계기를 마련하였다. 몰락하는 고려조의 남은 인물이 누군가? 모두가 정몽주의 이름을 들먹였다.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으로 하여금 마음을 떠보게 하였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기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서 백년까지 누리고저>

이 시조 한수의 내용을 오늘 풀이하자면 대개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정선생, 고려조를 받들던 충신이 새로 일어나는 왕조 하나를 섬긴다고 탓할 사람이 누굽니까. 만수산의 칡넝쿨이 서로 얽히듯 우리 손잡고 보람있는 여생을 살아봅시다』

만일 정몽주가 감투에 연연한 사람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무슨 연락이 있을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 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면 양화대교 가까운 강북 반듯한 곳에 그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고, 오고 가는 한국인이 모두 우러러보며 『참 멋있는 한국인이었다』며 감탄하겠는가. 그는 그 시조를 받아들고 답장으로 또한 시조 한수를 읊어서 띄웠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그는 이미 죽을 결심을 한 사람 아니었던가.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라는 그 한마디 때문에 그는 비록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한많은 세상을 하직하였다지만 이 겨레의 가슴속에 「멋있는 한국인」으로 영원히 남는 것 아닌가.

감투가 소중한가. 의리가 소중한가. 현실은 감투라 하고 역사는 의리라 한다. 오늘 아침에도 가느다란 음성이 하나 들려온다. 『감투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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