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도 당사자인 일본과 미국은 느긋한 태도이다.미국은 엔이 달러당 150엔선까지 가도록 방치해 둘 태세다. 일본은 외환시장에서 적극적인 방어를 하지 않고 있다. 5월에 열린 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도 엔의 방어에 대한 국제적 의지가 표명되지 않았다. 엔저(低)에 대한 일본과 미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또 서로 노리는 바는 어떤 것인가?◎“亞경제 합쳐도 日덩치 더커” 파장보다 日 경기회복 중시/손익분기150엔까지 방관할듯
외환전문가들은 엔화 약세가 일본 시장에 대한 불신의 반영이라고 본다. 일본이 잇단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 대대적인 구조조정 및 통화량 확대 등 정작 필요한 개혁 조치는 뒷전으로 미루고 있는데 대한 불만의 표시이다 지난달말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의 발언은 미국의 이러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당시 일본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면 엔화를 달러당 150엔까지 방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전했다. 그는 이로 인해 엔화가 폭락하는 사태에도 『놀랐다』고만 말해 보도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말을 바꾸면 엔약세로 주변국에 미칠 파장보다는 일본의 국내경제가 되살아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국을 다합쳐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덩치만 못하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다. 더욱이 개혁 방치시 일본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돼 미 경제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MIT대의 폴 크루거 교수같은 급진학자들은 다른 아시아국에 손상이 가더라도 통화팽창에 따른 인플레만이 일본 경기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현 엔화약세=달러강세는 미국에게 장단점을 동시에 안겨주는 동전의 양면이다. 대일무역적자 확대와 미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걱정되는 점이다. 특히 자동차, 기계류 등 공산품은 타격이 더욱 심하다. 하지만 값싼 수입품이 대량 유입됨으로써 경기과열시 우려되는 인플레를 진정시켜준다는 점에서는 득이다. 이 둘의 분기점이 대략 달러당 150엔선이라는 것이 시장의 주된 분석이다. 미국이 150까지의 하락을 방관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같은 분석을 근거로 한다.<뉴욕=윤석민 특파원>뉴욕=윤석민>
◎1엔 상승에 180억弗 필요/인위적 시장개입 한계 인식 수출주도로 경기회복 겨냥
달러당 140엔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도 일본 당국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의 도쿄(東京) 외환시장은 일본은행의 개입에 대한 경계심이 잠시 일었다가는 이내 「엔 팔자」 물결에 허물어 지는 나날이다.
일본 당국이 엔화 방어에 소극적인 것은 엔저의 구조적 요인을 무시한 인위적인 시장개입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는 이미 디플레 악순환 조짐까지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정부는 16조엔 규모의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했지만 아직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경기 부양 카드는 엔저 밖에 없다는 관측이 시장에 나돌고 있다. 엔저를 통해 현재 일본 경제에서 유일하게 제기능을 하고 있는 수출을 자극, 경기 회복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또한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의 상승이 본격적인 디플레 악순환을 막아 주는 측면도 고려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외환정책을 맡고 있는 하야미 마사루(速水優) 일본은행 총재는 「강한 엔」의 신봉자이다. 또 2,200억달러에 이르는 일본의 외환보유고로 보아 시장개입의 여력도 있다. 그러나 4월 뉴욕시장과 도쿄시장에서 달러당 1엔을 끌어 올리는 데 180억 달러를 써야 했던 경험이 적극적인 개입론을 제약하고 있다. 엔저가 수출을 자극, 미일 양국의 무역역조가 심화해 자연스럽게 엔 약세가 수정되는 시장 기능이 인위적 개입보다 무게를 띠는 분위기이다.
다만 마쓰나가 히카루(松永光) 대장성 장관이 공언한 「엔의 국제화」와 같은 경기 외적 요인에 따른 「강한 엔」 정책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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