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경제위기를 촉발시킨 외환위기는 새 정부의 노력으로 일단 봉합되었다. 그런 다음에는 경제가 풀려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풀리기는 커녕 「신용공황」이라는 위기의 제2파(第二波)가 몰려오고 있다. 거의 모든 기업, 모든 은행이 부실화하여 신용이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어음거래는 기피하고 현금거래만 요구하는 상황이다. 돈줄은 막히고 주식시장은 붕괴되고 있다. 이러한 공황을 방치한다면 금융시스템이 무너져 예금인출사태로 번질 수 있으며 대외신용이 추락하여 제2의 환란을 불러올 위험도 있는 것이다.왜 이렇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경제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처방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는 곧 현재의 구조조정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IMF처방은 「초긴축·초고금리」정책이라 할 수 있다. 돈줄을 막아 놓고 높은 금리로 목을 조이면, 기업과 은행이 넘어질 것이고 이것들을 퇴출시켜야 경제가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시중의 자금줄은 꽁꽁 묶여 있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25% 금리에도 돈을 구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해놓고 정부는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 500%가 넘는 기업부채비율을 내년까지 200%로 줄이라는 것이고, 은행들은 내년까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지키라는 것이며, 이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부실화하는 기업이나 은행은 퇴출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구조조정은 헛돌고 위기만 증폭되고 있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오히려 올라가고 있으며 적자기업 흑자기업 할 것 없이 모든 기업이 도산위기에 휘말려 있다. 넘어지는 기업들은 계열관계 거래관계 상호보증등으로 얽혀있는 기업들을 걸고 함께 넘어지고 이들은 다시 모든 빚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 그래서 자본잠식상태에 있는 은행들이 100조원이 넘는 부실채권을 껴안고 동반침몰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신용공황의 뇌관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IMF처방은 우리 경제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 첫째 그것은 통화인플레 때문에 외환위기가 생긴 남미형(또는 멕시코형) 경제를 위한 처방이다. 그러한 나라에서 금융긴축과 고금리는 좋은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외환위기는 그와 반대로 고비용으로 인한 경쟁력상실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요쪽에 문제가 있는 인플레가 아니라 공급쪽에 문제가 있는 디플레이다. 이런 나라에 고금리처방을 쓰면 극심한 불황과 신용공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제에는 노임과 금리의 인하, 그리고 재정긴축이 필요하며 통화긴축은 역효과를 내는 것이다.
둘째 IMF처방은 한국경제의 역사적 발전환경과 체질상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미국기업들은 빚이 적고 경제순환구조도 건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차입성장을 해왔고 그러한 구조로 틀이 짜여 있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100㎏의 체중을 지니고 산 사람에게 그것을 하루 아침에 60㎏으로 구조조정 하라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러한 금단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흑자도산부터 막아야 한다. 자금순환을 정상화시키고 금리는 12%수준으로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재정긴축은 강화하고 금융에서는 충분하게 돈을 풀어야 하며 특히 시중은행에서 돈이 나갈 수 있도록 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인플레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
다음으로 100조원의 금융부실채권에 대해서는 더욱 과감하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여 은행들의 신용을 회복시켜야 한다. 끝으로 정부개혁과 같은 제도개혁은 속전속결로 추진하되 기업과 은행의 재무구조개선과 같이 시장을 경유하여 이루어지는 시장개혁은 순리와 합리를 존중하여 속도와 방법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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