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절의 2通 “재계 스스로 뽑으라”/“대통령사돈” 선경 비토 YS 취임즉시 “의혹없게…” /선경 ‘1通 민영화’ 참여,포철·코오롱 연일 이전투구/전경련 “코오롱” 지지… 우여곡절끝에 ‘1%差’ 공동경영공을 넘겨받은 전경련 회장단. 공기업을 민영화하라고 소리높여 외치던 터라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공기업의 민영화 차원에서 한국이동통신(이하 1통)을 내놓고 여기에 제2이동통신(이하 2통) 사업자를 선정하라고 하니 단순한 일차방정식이 아니었다. 선경 포철 코오롱이 경합하는 이동전화사업 경합에 1통이 큰 변수로 등장한 셈이다.
먼저 어느 정도 선을 긋고 나선 것은 포철. 포철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1통에 관심을 보였다. 「1통의 주인이 되려면 대주주 지분 23%이상을 확보해야 하고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3,500억원내외. 더구나 이를 3월말까지 완납해야 한다. 그러나 2통은 전체자본금 2,000억원중 30%선인 600억원만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어차피 한판을 싸워야 한다. 선경과 코오롱이 자금력이 약하니 1통으로 가자」 포철의 계산이었으나 전경련 회장단이 의도대로 따라줄 지 의문이었다.
역시 회장단이 문제였다. 1월15일 오후 7시.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의 개인 영빈관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는 전경련 의사를 좌우하는 회장단이 모두 모였다. 삼성 이회장은 물론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 나왔고 김우중(金宇中) 대우 회장도 모처럼 참석했다. 정세영(鄭世永) 현대 김석원(金錫元) 쌍용 조석래(趙錫來) 효성 김각중(金珏中) 경방 박성용(朴晟容) 금호 장치혁(張致赫) 고합 강신호(姜信浩) 동아제약 회장과 조규하(曺圭河) 부회장 등도 있었다.
저녁식사를 겸해 2시간 가량 열린 이 회의에서 회장단은 1통과 2통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1통과 2통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회장단으로서는 사업권자 결정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의외로 단순해졌다. 이날 회의말미에서 선경 최회장이 「2통 포기, 1통 참여」의사를 밝혔다. 전경련회장으로서 포철이든 코오롱이든 2통을 놓고 경쟁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선경이 1통으로 빠지자 경합은 이제 코오롱과 포철, 양자대결로 좁혀졌다. 전경련에서는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양사의 능력을 점수매기느라 바빴고 양사는 링사이드를 돌며 탐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탐색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2월14일 사업신청서를 접수하면서 의지를 확인한 양사는 완전히 한판 붙었다. 양사가 만들어 내는 온갖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며 소문을 해명하느라, 역공하느라 연일 발표자료를 냈다. 이전투구(泥田鬪狗) 그 자체였다.
익명을 요구한 포철 관계자. 『포철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회장단은 그러나 코오롱쪽이라고 들었죠.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외부에 흘려 포철이 우세함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느 쪽 우세라고 얘기할 수 없이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역시 이름밝히기를 끼리는 전경련 관계자. 『맞습니다. 점수는 분명 포철이 높았습니다. 1차 경쟁때 선경을 1등으로 하고 코오롱과 포철이 한번씩 2등한 것처럼 점수차는 아주 근소했습니다. 회장단 회의에서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점수였으며 회장단의 의견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회장단은 연일 승지원을 중심으로 회의를 열었다. 양사의 자율적인 조정을 요구했으나 스스로 결정지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역시 회장단이 결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포철쪽에 관계했던 O씨. 『포철이 분명 우세한데 코오롱 이웅렬(李雄烈) 부회장이 김현철(金賢哲)과 친해 회장단이 포철로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여론은 포철이 우세했다. 앞으로 1조원이상을 투자해야 하는데 코오롱으로는 자금력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코오롱에는 또 대주주로 일본의 도레이가 있어 국가기간산업에 일본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2통 주인이 코오롱으로 결정되면 모두들 특혜라고 생각했다.
회장단의 생각은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와 전혀 달랐다. 전경련 관계자. 『2월초부터 6차례에 걸쳐 진행된 회의에서 회장단들은 코오롱쪽이었습니다. 국민의 돈으로 철강 산업을 하라고 나라가 지원한 포철이 왜 다른 사업에 참여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죠. 중요한 사업을 국가가 다하면 사회주의 경제의 폐해가 일어난다, 포철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물론 최종현회장등 일부 회장단은 포철쪽에 마음을 두었지요. 회장단중 3분의2 가량이 코오롱을 지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바삐 움직인 재계인사는 전경련 조규하부회장이었다. 조부회장. 『회장단의 의견은 코오롱이었습니다. 진짜 김현철이 배경에 있는지 의문이 갈 정도였지요. 2월말께 김현철씨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솔직하게 다 말했지요』
『이웅렬과 친하다고 하는데 별다른 뜻을 갖고 있습니까』(조부회장) 『알기는 압니다』(김현철) 『그렇다 하더라도 손대지 마세요. 재계가 얼마나 복잡한데 너무 개입하지 마세요. 이 사업과 관련해 진짜 의중은 무엇입니까』(조)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 문제는 전경련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저와 전혀 관계짓지 마세요』(김)
곧이어 박관용(朴寬用) 비서실장이 조부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코오롱은 안됩니다. 김현철과 연관됐다는 소문이 있으나 그런 것은 절대 없습니다. 청와대가 영향을 미친다는 인상을 주면 안됩니다. 청와대와 관계 없어요. 왜 그런 문제를 안고있는 기업에게 사업권을 주려고 합니까. 청와대 눈치보지 말고 전경련이 알아서 결정하세요』. 조부회장의 답변. 『박실장께서 그 얘기를 삼성 이회장에게 해주세요. 당사자들에게도 해주세요. 직접 뜻을 전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박실장은 선경 최회장과 코오롱 이동찬(李東燦) 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코오롱 이회장에게는 『김현철을 팔지마라』고 했고 선경 최회장에게는 『전경련에 맡겼으니 알아서 결정하라』고 한 것으로 후에 확인됐다.
2월27일. 발표 전날. 코오롱 이회장은 조규하 부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회장은 조부회장에게 2통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조부회장 생각에는 청와대의 뜻을 그렇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부회장은 그러나 『회장단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고 이회장에게 말했다.
한국과학기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조부회장의 회고. 『입장을 정리하기가 어려웠어요. 여론은 포철이 우세하고, 회장단의 결정을 뒤집을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동경영안이었어요. 청와대나 여론, 회장단을 모두 살리는 안이라고 생각했지요. 사실 포철이나 코오롱 모두 자신을 대주주로 하면 2대 주주로는 상대사를 정하겠다고 결정해 놓고 있었어요. 특히 포철은 자신을 1대 주주로 하면 코오롱을 1% 내외 차이의 2대 주주로 하겠다고 했지요』
2월28일. 결정의 날은 왔다. 포철 정명식(鄭明植) 회장과 코오롱 이부회장이 11시로 예정된 회장단회의에 앞서 일찌감치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조부회장실에 도착했다. 조부회장. 『아직 시간이 있으니 두분이 협의하시지요.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경영하는 방안을 논의해 주시지요』 조부회장은 회장단회의에 참석했다. 잠시 나와보니 여전히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포철 정회장은 경영을 단독으로 하겠다고 하고, 코오롱 이부회장은 감사라도 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회장실로 돌아온 조부회장은 회장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삼성 이회장에게 회장단의 의견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삼성 이회장은 둘이 기다리는 옆방으로 갔다. 『두분이 협력해 멋있는 회사를 만들어 주세요. 재계의 뜻은 코오롱이었습니다. 포철은 여론이었지요. 우리가 이 둘을 다 만족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철의 자금력과 사기업의 장점을 살려주세요』 『손해보지만 따르지요』 포철 정회장은 코오롱 이부회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조규하 이사장. 『당시 완전히 떨어져야 할 코오롱이 김현철을 등에 업고 1% 차이의 2대 주주가 됐다는 말이 나돌았지요. 양쪽 모두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고. 코오롱의 1%차이 2대주주는 포철의 안이었어요. 당시 결정은 최선이었어요. 재계의 자율적인 협력분위기가 계속 이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이종재 기자>이종재>
◎“아내와 자식 사랑하지만 나라를 더욱 사랑합니다”/YS 2通 관련 노태우 빗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청렴결백한 풍토조성에 앞장서야 합니다. 나도 내 아내와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나라를 더욱 사랑합니』 92년 8월21일. 민자당 강릉지구당 개편대회에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후보는 난데없이 아내와 자식얘기를 꺼냈다. 전날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사돈기업인 선경에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넘기자 「부당함」을 빗댄 말이다. 김후보와 여론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의 선경 불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선경은 결국 사업권포기를 공식 선언하고 말았다. 김후보가 민자당 총재직에 취임하기 하루전인 8월27일이었다. 이동통신사업권은 이처럼 애당초부터 정치적 산물이었다. 참여업체가 그렇고 선정과정 역시 정치적이었다. 선경은 「대통령과 사돈」이란 이유로 선정됐다가 똑같은 이유로 사업권을 반납했다. 사업권은 차기정권으로 넘어갔으며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향한 진검(眞劍)승부는 바로 문민정부에서 벌어진 이 2차전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이 문제를 챙기고 나섰다. 『제2이동전화사업자 선정에 있어서 유리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한치의 의혹도 없이 하시오』 취임후 얼마되지않아 김대통령은 윤동윤(尹東潤) 체신부 장관에게 말했다. 10개월 가까이 고민한 윤장관이 내놓은 안은 「재계 자율선정」이었다. 전경련에 사업자 선정을 맡길테니 알아서 하고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이동통신을 동시에 민영화할테니 경합업체끼리 묘수를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일지
92.4.14 체신부,이동전화사업 및 무선호출사업 신규허가신청 광고
92.6.26 6개 그룹 허가신청.(선경,포철,코오롱,쌍용,동양,동부)
96.7.29 1차 심사발표. 1위 선경(8,127점),2위 코오롱(7,783),3위 포철(7,711)
92.8.20 2차 심사발표. 1위 선경(8,388),2위 포철(7,496),3위 코오롱(7,099)
92.8.27 선경 사업권 포기발표(김영삼 후보의 이의제기)
93.12.10 체신부,2차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방식 발표,「전경련에 컨소시엄 구성을 의뢰,두달내 사업자 선정」
94.1.24 신청서 접수,(포철 코오롱 금호 동부 심환 아남 건영 영풍)
94.1.15∼2.23 전경련회장단 6차례 승지원 회동. 이 기간에 선경에 제2이동통신을 포기하고 한국이동통신 인수결정. 쌍용 동양 포기.
94.2.14 서류심사 및 합동 면접. 단일 컨소시엄 구성키로 결정.
94.2.28 포철을 1대주주, 코오롱을 2대주주로 한 사업권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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