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는 모든 국민에게 고통을 가져왔지만 그중에도 근로자들이 강요받는 고통이 누구보다 크다. 올들어 실업자수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고, 설사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봉, 임금반납등으로 소득은 크게 줄었는데 물가는 치솟고 은행금리까지 턱없이 올라 이들이 받는 생계압박도 보통일이 아니다.지난 4월중 실업자수가 이미 143만명. 앞으로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본격화하면 실업자수는 200만명이 쉽게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 노동계가 근로자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을 수는 없다며 노사정위원회의 불참과 총파업을 선언하는등 바람직 하지 못한 분위기마저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실업대책은 여전히 겉돌고 있다. 실직자의 생활안정용 생계자금 대부사업만 해도 그렇다. 대출시작 한달이 지난 5월23일 현재 4,959명이 513억원의 대출신청을 했지만 막상 대출이 이뤄진것은 신청액의 고작 20%선인 110억원 남짓이다. 대책없이 직장을 잃고 생계가 막연한 실직자로선 최소한의 생계유지,재취업준비까지의 생활안정자금 지원만큼 절실히 필요한 것도 없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앞둔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맞추기에 급급, 근로자 대출을 기피한다. 실직자 상호간의 맞보증 허용등 대출조건 완화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일선은행 창구에서는 도대체 먹혀들지 않는다. 정부차원의 금융지원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고용안정채권 발행으로 지원기금을 조성한다는 정부계획부터 차질이 생겨 규모축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3개월 한시발매 두달동안 매각실적이 목표액의 10%에도 못미치고 있다.
대량실업에 대비할 수 있는 근로자 금융지원체제의 구축이 시급하다.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은행, 농·축·수산업을 위해서는 농·축·수협이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주택금융은 주택은행이 그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근로자를 위해서는 별도의 정책금융기능이 없다. 근로자 금융은 그 성격상 코스트와 리스크가 높은 신용대출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보전할 수 있는 정책지원없이는 활성화할 수 없다.
근로자 은행으로 평화은행이 있지만 설립형태가 특수은행아닌 일반 시중은행이어서 제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차라리 이를 근로자금융 전문기관으로 중점 육성하거나 정부출자에 의한 특수은행으로 전환시켜 근로자를 위한 체계적인 금융지원체제를 재구축하는 것도 긍정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대량실업시대를 맞아 근로자를 끌어안는 정책적 배려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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