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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위계존중’ 자연스런 선택/교체배경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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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위계존중’ 자연스런 선택/교체배경과 전망

입력
1998.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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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강우일·장익주교 유력/‘사실상 2인자’ 정주교로 낙점/김추기경은 상징적지위 유지로마교황청은 정진석대주교를 택했다. 그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한국천주교를 이끄는 「사실상의 2인자」이므로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천주교 풍토에서는 자연스런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천주교계는 그동안 강우일(姜禹一·53·가톨릭대 총장)주교나 로마통인 장익(張益·65)춘천교구장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왔다.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주한 교황청대사는 최근 정진석 장익 강우일주교를 서울대교구장 후보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게 추천했다. 전임자로서 후임자 임명에 영향력을 미치는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일본 조치(上智)대 후배이자 자신을 보좌해온 강주교를 천거했고, 교황청은 로마통인 장주교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구장 정년이 만75세이므로 현재 67세인 정대주교는 8년후 교구장에서 물러나야 하는 문제도 있다.

정대주교는 신앙적으로 원칙주의자이면서도 포용력이 커 서울대교구의 운영스타일이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생명존중을 강조하고 건전한 가정생활을 중시하는 점에 비추어 사회참여 이상으로 신앙활동과 신자들의 윤리성 강화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정대주교는 서울대교구가 한국을 대표하는 교구라는 점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추기경 2명시대를 맞을 수 있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6월29일 이임식 때까지 명동성당에 머물게 된다. 김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직을 떠나더라도 추기경으로서 정신적 지도자라는 상징적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천주교 관계자는 김추기경이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서사봉 기자>

◎정진석 새 서울대교구장 회견/“노동자·서민에 용기주도록 노력”/정·재계가 앞장서 국민대화합 이뤄야/종교의 사회참여는 하느님말씀 따를것

30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정진석(鄭鎭奭·67·니콜라오)대주교는 『부족한 사람에게 막중한 책임을 맡겨준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하느님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여 소외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대주교는 이 날 오전 청주가톨릭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청주교구에서의 28년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황금기였다』고 회고한 뒤 『앞으로 서울사정을 잘 아는 신부들의 도움을 받아 신자와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중책을 수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대주교는 또 『경제가 어려워 고통받는 국민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우선 정·재계가 국난 극복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국민대화합을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적 뒷받침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정대주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서민들에게 용기를 가지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회참여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는대로 그 날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하느님께 여쭤왔다』며 『각종 사회문제도 그 날 그 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찾아 대응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많은 책을 저술한 정대주교는 『청주에서는 모든 사람이 나를 즐겁게 해줘 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다』며 『많은 책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 사제단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청주=한덕동 기자>

◎프로필/30세때인 61년 사제서품/96년부터 주교회의장 수행/교회법정통 저서12권 출간/“너그럽고 소탈한 인품” 評

「교회법학자」「최연소 주교」로 불리워온 정진석대주교는 96년부터 주교회의의장으로서 한국천주교를 대표해 왔다. 정대주교는 1931년 12월 충북 청주에서 친가 외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집안에서 태어났다. 중앙중학(6년제)을 거쳐 서울대공대 화공과에 입학했다가 한국전쟁으로 중퇴한 뒤 가톨릭대 전신인 성심대학에 진학, 30세때인 61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교계제도사」등 저서 12권, 「교회법전」등 역서 13권을 냈으며 83년부터 15년째 주교회의 교회법위원장을 맡을 만큼 교회법에 정통한 사제이다.

서울대교구장 서임에는 해박한 지식, 너그럽고 소탈한 인품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3년째 정대주교를 보좌해온 송열섭(宋悅燮) 신부는 『책을 포장해 선물해 드렸더니 「왜 필요없는 치장을 하느냐」고 말하신 것이 유일한 꾸중이었다』고 전할 정도이다. 그는 중학교시절 마르크시즘을 접하면서 갈등을 겪다가 「영혼」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61년 서울 중림동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활동을 시작, 성신고교에서 6년간 교편을 잡았고 65∼67년 서울대교구장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이후 70년 로마 우르바노대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고 최연소(39세) 주교로 서품되면서 청주교구장에 착좌했다. 주교회의 총무, 부의장을 거쳐 96년 10월 의장을 맡은 정대주교는 99년9월까지 이 직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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