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IMF체제속 정치개혁 압박직면/사망 등 24명 국회떠나… 처리안건 767건15대 전반기 국회가 29일로 막을 내렸다. 전반기 국회 2년은 정치적으로는 혼돈과 파행의 연속이었고 의정활동에서는 나름대로 노력이 엿보인 모색기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한국정치의 고질인 파당성과 이합집산, 대립과 갈등이 의정활동의 긍정적 변화를 압도했다는 점에서 전반기 국회는 역설적으로 정치개혁의 당위성을 절실하게 느끼게한 시기였다고 평할 수 있다.
15대 국회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4·11 총선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무소속 영입을 둘러싸고 여야간 갈등이 첨예화해 국회는 법정개원일(96년6월5일)을 지키지 못하고 7월4일에야 겨우 원(院)구성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후반기 원구성도 법정 시한(98년5월29일)을 넘겼다.
의원들의 당적 변화를 보면, 정치권의 불안정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의석수는 총선 직후 신한국 139, 국민회의 79, 자민련 50, 민주 15, 무소속 16석이었으나 개원때는 신한국 151, 국민회의 79, 자민련 49, 민주 12, 무소속 8석으로 변했다. 지금은 한나라 149, 국민회의 85, 자민련 47, 국민신당 8, 무소속 3석으로 달라졌다.
의원 개개인의 변신을 보면 현란하다. 정당을 3∼4차례 오간 의원들이 적지않다. 국민회의 조철구(趙澈九) 신기하(辛基夏), 자민련 이병희(李秉禧) 권수창(權秀昌), 한나라당 남평우(南平祐)의원 등 5명이 사망하고 한보비리, 지방선거출마, 탈당 등의 사유로 19명이 의원직을 상실, 모두 24명이 국회를 떠났다.
정치적 굴절에 비해 의정활동은 그런대로 활발했다. 정기국회 2회와 임시국회 12회 등 14회로 13대전반기의 9회, 14대전반기의 12회를 웃돌았다. 회기일수 440일, 접수안건 1,074건, 처리안건 767건(가결 634 부결 1 폐기 120 철회 12건) 등도 지난 국회 보다 많다.
그러나 통계와는 달리 내용면에서는 치명적인 과오가 있었다. 노동법의 날치기처리로 노동계의 총파업을 초래했고 IMF체제로 경제파국이 오는데도 국회는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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