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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풀린 民心… 망명 가능성/수하르토 일생·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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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풀린 民心… 망명 가능성/수하르토 일생·운명

입력
1998.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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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수카르노 밀어내고 권좌 오를때와 흡사/고도성장불구 족벌정치로 되레 국민저항 초래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의 몰락상황은 60년대 중반 젊은 군사령관으로서 수카르노 대통령에게 사임을 요구하고 권좌에 오를 때와 매우 흡사하다.

그는 1921년 6월 8일 자바섬 중부 족자카르타 근처 케무수­아르고물료 마을에서 출생했다. 1940년 6월 1일 초등교육을 마친 후 왕립 네덜란드 인도네시아군에 입대, 6개월간 기본 훈련을 받은 뒤 1942년 일본군 점령 이전 하사관으로 진급했다. 1945년 8월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포하고 수카르노가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된지 석달 후 수하르토는 네덜란드의 재식민화 기도에 저항하는 국민군에 참여했고 49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을 때 중령까지 올랐다.

그는 65년 군부내 불만세력들이 쿠데타를 기도하자 이를 진압하고 이를 배후조정한 세력이 공산당이라고 몰아붙여 50만여명을 처형하는 도살극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66년 군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수카르노를 몰아내고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절 석유와 가스산업의 수익을 이용, 지난해 통화위기가 촉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연평균 7%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인도네시아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때문에 「자바의 왕」이라는 말을 들었고 국민들로부터 인도네시아의 국부로 추앙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정치개혁은 외면하고 자신의 친인척에 의한 족벌정치로 국민적 비판을 받아왔다. 자녀 6명은 자동차와 석유화학, 은행 등 국가의 기간산업을 장악한 재벌로 급성장한데다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는 등 인도네시아를 좌지우지해왔다. 이것이 인도네시아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게 되는 등 경제난에 처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됐다.

이같은 부정부패는 결국 지난해 7월 루피아화 폭락과 이로 인한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으며 폭동과 소요사태를 촉발하고 말았다. 수하르토는 자동차로부터 은행, 합판 등에 이르는 족벌기업들을 개혁하는 것을 조건으로 IMF로부터 43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약속받았음에도 IMF가 주문한 이같은 경제개혁을 착실히 이행하기는 커녕 오히려 반발하고 나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3월10일 국민협의회(MPR)에서 대통령에 일곱번째로 선출된 그는 『결코 재임중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으나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6월이면 77세가 되는 고령인데다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다. 대학생과 재야세력은 그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벌써 그의 망명설이 나오고 있다. 그가 망명하게될 지 여부는 현재로서 추측하기 어려우나 남은 여생을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지낼 것만은 분명하다.<이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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