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의 1인 독재를 종식시킨 인도네시아의 5월은 뜨거웠다. 2월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반정부시위는 5월들어 수하르토 퇴진시위로 이어졌다. 연료값 인상조치를 계기로 시민들도 반정부 시위에 가세하면서 수하르토의 운명은 날개없는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다.①유가인상 불붙은 시위
수하르토 대통령은 1일 자신의 재임중 정치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발표했다.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는 격화하기 시작했다. 4일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표한 휘발유값 71% 인상과 전기료 60% 인상 등 대폭적인 인상조치는 반정부 시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마침내 시민들도 대학생들과 함께 수하르토 퇴진을 외치기 시작했다.②시민 총격사에 분노폭발
6일 북수마트라주 메단시에서 시위도중 시민 2명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시위대의 방화로 4명이 숨졌다. 5월시위는 이때부터 유혈시위로 번져갔다. 수하르토 정권의 중심축인 위란토 국방장관 겸 통합군사령관은 『군부는 개혁방안을 강구중』이라고 선언했다. 국회는 정부가 요청한 연료값 인상조치에 대한 인준을 거부했다.
③자카르타로 불길 확산
피를 본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수하르토 대통령은 9일 G15 회의에 참석키 위해 이집트로 출국했다. 수하르토는 출국성명에서 강경진압을 지시했다. 그러나 시위는 수도 자카르타로 이어져 12일 트리삭티대학생들의 시위도중 진압군경의 발포로 대학생 4명 등 6명이 사망했다. 반정부 시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신호탄이었다.
④방화·폭동 무정부상태
시위도중 사망한 대학생들의 장례식이 열린 13일 자카르타는 폭동과 약탈로 얼룩졌다. 밤새 이어진 유혈폭동으로 자카르타는 무정부 상태가 됐다. 시위대의 방화로 3곳의 백화점이 불타 500여명이 사망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15일 새벽 급거 귀국, 조건부 사임의사를 밝혔다. 자카르타에 1만5,000명의 군병력이 증파됐고 외국인들의 탈출행렬이 시작됐다.
⑤의사당 점거 퇴진 압력
수하르토대통령은 15일 긴급각료회의를 열어 연료값 인상조치를 철회했다. 유혈폭동 시위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수하르토는 16일 사임의사를 번복하고 개각계획을 발표했다. 대학생들의 국회점거 시위기 시작됐고 하르모코 국회의장은 18일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임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위란토 국방장관은 이에대해 사임요구는 불법이라고 밝혔다.
⑥‘피플파워’ 마침내 승리
수하르토 대통령은 19일 조기총선후 사임하겠다는 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대학생과 재야단체가 20일 「국민각성의 날」을 맞아 계획했던 대규모 시위는 군경의 원천봉쇄로 무산됐지만 족자카르타에서는 50만명의 시민과 대학생이 평화시위를 벌였다. 이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수하르토의 사임을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21일 수하르토는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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