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명창의 기백 요즘 소리에‘매질’20세기 판소리의 마지막 황금기였던 70년대를 떠올리면 당시 중견급 명창으로 성우향(63)이 가장 두드러지게 기억에 남는다. 유난히 목이 좋고 학습이 충실하여 이미 50년대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왕년의 스타 성우향이 16일 다시 무대에 섰다. 공식 공연에서 몇시간동안 길게 소리를 하기는 12년만이었다.
짧은 인사 후 곧바로 공연에 들어간 성우향은 박록주제 단가 「백발가」로 목을 가다듬은 후 정응민제 춘향가 중 처음부터「춘향이 옥에 갇히는 대목」까지 들려줬다.
가정생활이 안정된 후 최근 몇년간 목이 차츰 좋아져서 잃었던 예전 목성음을 많이 되찾은 모습이었다. 중성과 하성 부분은 오히려 전보다 더 원숙해진 면이 있어 반가웠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성은 그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아 소리를 끌고 나가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섰는데도 몸짓은 대단히 자연스러워 보였고 아니리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북 반주는 김성권과 김청만이 맡았는데 특별히 광주에서 초빙해온 김성권(72)은 연로한 탓에 기운이 많이 쇠약해진 모습을 보여 안타까웠다.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3시간 가량 치러진 공연의 절정은 무엇보다 춘향가 중 「십장가」였다. 「이별가」 이후 목이 한층 풀리기 시작하여 「십장가」에 이르러서는 요즘 남성판소리에서도 보기 드문 동편제의 진수를 보여줬다.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가 매를 맞는 이 대목에서는 관중도 함께 따라 불렀는데 최근 유행하는 되바라진 신식 소리에 대한 거부와 경고의 매질처럼 느껴졌고 복고풍을 갈망하는 소리로 들려왔다.
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명창들 가운데 이제 성우향은 몇 남지 않은 판소리 왕중왕이다. 이제 21세기의 판소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게 매달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공연은 가히 원로가 일으킨 판소리혁명이었다. 잠자고 있던 호랑이의 포효와 같이 정통 고제(古制) 소리의 참모습을 다시 세상에 던져놓았다. 공연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십장가」의 매질소리가 부디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노재명 국악음반연구소장>노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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