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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시대 진수 ‘삼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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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시대 진수 ‘삼재’를 만난다

입력
1998.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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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겸재 정선·관아재 조영석·현재 심사정’ 전/숙종∼정조 125년 사대부로 당당한 畵業/그 기량·품격 한자리에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서는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운 법이다. 숙종(1675∼1720)에서 정조(1777∼1800)에 이르는 125년 진경(眞景)시대는 바로 우리 문화를 우리 눈으로 드러냈던 문화의 르네상스시기였다.

사대부 출신으로 당당한 화업을 이루었던 「사인(士人) 삼재(三齋)」, 즉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1686∼1761),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1707∼1769) 등 3인의 기량과 품격을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상반기 전시로 마련한 「진경시대 삼재」전은 최근 학계에서 조명받기 시작한 진경시대 대표작가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로 의미가 깊다.

진경산수의 핵심은 조선중화사상. 율곡의 성리학사상을 계승하고 명(明)의 문화계승자를 자임한다는 것이다. 지식인적 문예부흥운동의 성격이 짙다. 진경시대의 그림문화가 사대부 출신 문인화가들에 의해 주도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재 중 으뜸으로 치는 이는 역시 겸재. 우암 송시열의 제자이며 영조의 스승이었던 겸재는 북방화법과 남방화법의 특장을 조화하고 주역의 음양조화 원리를 과감히 도입, 조선적 진경산수의 새 장을 개척한 화성(畵聖)으로 불린다. 『단원을 임모(臨摹·그대로 베껴 내는 것)하는 것보다 겸재를 임모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아직도 불가능하다. 그만큼 겸재 그림이 독창적이고 깊이가 있다는 얘기』라는 간송미술관 최완수 학예연구실장의 설명이다.

관아재는 겸재의 10년 아래로 『겸재와 겨루기 어렵다』며 아예 인물화와 풍속화에 주력했다. 겸재와 맞서기보다는 장르를 달리해 진경시대의 한 부분을 장식했는데 진경 풍속화의 시조가 된 이가 바로 그이다.

현재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 그는 겸재식 화풍을 거부하면서 명대 남종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겸재를 극복하려다 그에게 사로잡힌 것이 바로 현재의 그림』이라는 게 최실장의 설명이다. 사화에 연루되기도 하고, 어진(御眞)화가로도 궁궐에 드나드는등 권력을 지향하며 주변부를 맴돌았던 현재. 야망과 좌절의 흔적이 그림에도 나타나지만 어쨌든 그의 그런 야심의 바탕에는 조선 고유색이 깊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조선 남종화의 시조로 평가된다.

전시작품은 겸재의 「여산초당(廬山草堂)」, 「청풍계(淸風溪)」, 「총석정(叢石亭)」,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등 대표작과 관아재의 노승휴장(老僧携杖), 현재의 「고성(高城) 삼일포(三日浦)」등 70여점. 서둘러 핀 작약이 질 채비를 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나들이하기에도 좋은 장소이다. 17일 시작된 전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02)762­0442<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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