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換亂)의 초기 수습고비를 간신히 넘긴 우리경제에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징후들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살생부(殺生簿)파동이 금융시장의 혼란과 경색을 초래하면서 주가는 11년만의 최저시세로 맥없이 폭락하고 안정세를 되찾는 것 같던 환율도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눈길도 싸늘하게 식어 단기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추진되던 투자도 취소되거나 유보되고 있다. 작년말의 외환위기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살아 나면서 제2의 경제위기설이 시중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사태가 왜 이런식으로 꼬여가는가. 말로는 IMF극복을 외치면서 우리가 이를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실천했는가부터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고통을 남에게 미루면서 시간만 허송했을 뿐이다. 경제의 구조개혁은 미적거리기만 했고, 미숙한 정부의 늑장대응이 금융불안을 증폭시켜 대량부도와 실업사태의 악몽을 되살리면서 경제의 위기감을 부채질했다. 어렵게 얻어낸 노사정 대타협의 정신도 끝내 살리지 못한채 노동계는 집단시위와 총파업 위협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국내 19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조정한 것은 경제구조조정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냉정하게 판단한 것으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 국가신용등급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산업은행의 신용조차 격하된 것은 이미 우리의 외채조달의 길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한계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를 계속하고, 민영화 차원에서 매각한 금융기관이 부실화했다고 이를 다시 사들여 생존시키는 원칙없는 행동을 보고 누가 정부의 개혁의지를 믿을 수 있겠는가.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를 국내기업인들 신뢰하겠는가.
정치권은 국난(國難)은 아랑곳 없이 지방선거만 의식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낳고 있다. 정책초점이 한동안 구조개혁인지 실업대책인지 모르게 오락가락하더니 구조조정을 다그치는 기업에 정리해고는 자제하라는 앞뒤 안맞는 압력도 넣고있다.
인도네시아 사태가 초래할 아시아 금융위기 확산우려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 대출회수 부담을 한국에 전가할 가능성이 없지않고 이에따른 외환사정 경색은 즉각 우리의 발등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방심하면 경제위기는 항상 재연될 수 있다. 외환보유고가 이만큼 쌓였는데 설마 작년말 같은 상황으로 까지야 가겠느냐는 생각은 위험하다. 우리는 지난 어려움을 너무 쉽게 잊고있다.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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