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소위 본격적인 경제구조조정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말이 좋아 구조조정이지 사실은 「부실기업(부실금융기관)의 살벌한 부도행렬」이다.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조기극복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피할 방법이 없다. 금융시장 동요, 연쇄부도, 대량실업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 고통없는 수술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부작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이다. 구조조정의 성패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다. 수술은 잘했는데 환자가 죽고 말았다거나, 수술이 잘못되어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게 되면 한국경제는 끝장이다.
정부당국은 절체절명의 국가과제인 구조조정을 단행함에 있어 「IMF식 관치금융」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마당에 웬 관치금융 타령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관치(官治)금융과 정치(政治)금융을 혼동하는데서 오는 오해 때문이다. 순수한 의미의 관치금융은 정부당국이 「선의의 관리자」로서 국가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반면 정치금융은 정치권이 정권유지나 정치자금(뇌물)조달을 위해 탈법적으로 금융시장을 왜곡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협조융자를 주무장관이 공식적으로 채권은행단에 요청했느냐 아니면 비공식적으로 요구했느냐, 의사전달 방법이 공문서냐 전화냐, 실무선의 검토를 거쳤느냐 장관이 독자적으로 결정했느냐 등에 따라 관치금융과 정치금융이 구별된다. 제대로 된 관치금융은 투명하고 예측가능하다.
엄격히 말해 철폐의 대상은 정치금융이지 결코 관치금융이 아니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관치금융을 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한국경제는 지금 관치금융상태에 있다. IMF가 거대부실기업인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관치금융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관치금융의 실질적인 주체는 미국(재무부)이다. IMF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경제주권」을 넘겨받았다. 현직대통령과 대통령후보가 각서를 썼다. 기업으로 치면 오너가 경영권포기각서를 IMF에 낸 셈이다. 미국은 IMF의 대주주로서 IMF프로그램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다. IMF한국사무소는 한국정부의 각서이행여부를 감시하고 있다. IMF의 이같은 조치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관치금융」이다.
우리정부는 부실대기업에 대한 구제금융(협조융자)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동아건설에 대한 협조융자를 예로 들어보자. 정부채권은행단동아건설의 관계와 미재무부IMF한국정부의 관계를 비교해 보면 우리정부가 얼마나 소신없는지를 알 수 있다. 정부당국과 채권은행단은 최소한 미국과 IMF가 한국에 대해 취한 조치수준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최원석(崔元碩) 회장이 경영권포기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케 하고 강력한 자구노력을 강제해야 하며 이의 이행여부를 감시할 내부장치를 갖춘 다음에 협조융자를 줬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선의의 관리자」로서 금융시장에 개입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은 지금 경제비상시국이다. 정상적인 시장시스템이 일시적으로 깨지고 말았다. 또다른 이유는 정부가 국책은행은 물론 몇몇 시중은행의 대주주이고 모든 금융기관의 예금에 대해 2000년 12월말까지 지급보증을 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은행의 대주주로서, 또는 채권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망하면 정부는 국민의 혈세로 그 금융기관을 지원해야 할 입장이다.
몰아치기식의 부실기업 퇴출은 구조조정의 러시아워현상을 야기, 전혀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 시장기능을 보완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IMF식 관치금융」으로 부실대기업을 전략적으로 처리해 나가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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