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대출 싹쓸이땐/빈곤한 中企 집중타/2·3금융권 협조 절실대량도산사태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금융구조조정에 따른 극심한 대출경색이 빚어지는 가운데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살생부」작성 작업이 시작됨에 따라 자칫 금융과 기업 전체가 심각한 신용공황상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를 무너뜨리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경제를 다시 세우는 구조조정이 되려면 금융당국이 스스로 천명했던 것처럼 최대한 「짧고 단호하게(Short & Sharp)」, 그러면서도 시장기능을 정지시키지 않으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신드롬 지난해초 한보 삼미 사태이후 금융권에는 「도산후보기업명단」을 적은 살생부가 나돌았다.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엔 경쟁업체를 겨냥해 특정기업이 흘린 「매터도성 블랙리스트」도 있었다.
그러나 한보 삼미에 홍역을 치른 금융기관, 특히 종금사들은 살생부 진위여부를 떠나 무차별 여신회수에 들어갔고 결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은 예외없이 쓰러져나갔다. 진로 대농 기아가 모두 그런 경우다.
이번 살생부 작성과정에서도 「블랙리스트 신드롬」의 재연가능성이 높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는 『정리기업선별은 과거처럼 소문이 아닌 은행의 객관적 분석에 기초한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엄청난 소문이 난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만약 「A그룹이 살생부에 올랐다더라」 「B재벌도 위험하다더라」는 루머가 퍼지면 종금 보험등 제2금융권은 물론 신용금고 파이낸스 할부금융등 제3금융권의 무차별 여신회수가 시작돼 이 기업들은 실제로 도산사태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한 금융계인사는 『작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제2,3금융권의 협조를 어떤 방법으로든 확보해야하며 이를 위해선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모재벌그룹 관계자도 『일단 살생부 후보에 오른 협조융자 11개 기업과 재무구조가 불량한 10여개 기업이 루머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지난해처럼 근거없는 살생부가 난무하고 제2,3 금융권의 무차별 어음교환사태가 빚어진다면 4대재벌 이하는 모두 위험하다』고 말했다.
■빈익빈 부익부속의 패닉(신용공황) 작년까지 은행의 기업대출은 월평균 3조∼5조원. 그러나 2월이후 은행권 대출총액은 월 1,500억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내달부터 시작될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생존키 위해 은행들이 집중적 대출자산축소에 나서고 있기 때문. 살인적 고금리도 문제지만 전면폐쇄된 은행자금창구는 기업들을 존폐기로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출축소가 중견이하 기업에 집중된다는 점. 올들어 발행된 11조원 규모의 회사채도 삼성 현대 대우 LG등 4대재벌이 9할가량을 싹쓸이했다. 금융구조조정의 신용경색은 중견·중소기업만 고통을 전담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수많은 중소기업 및 건실기업이 부실기업정리에 휩쓸려 함께 쓰러지지 않게 하려면 금리를 낮추고 대출을 재개토록 비상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한 은행임원은 『지금처럼 자원배분이 왜곡된 상황에서 살생부에 의한 마녀사냥식 여신회수가 더해진다면 금융시장, 나아가 신용질서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라며 『금융 기업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철저한 시장보완대책을 마련하고 2차,3차 구조조정이 필요없도록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확실하게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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